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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신발 투척남' 구속 기로…계란 맞은 盧 "국민 화풀린다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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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정모씨가 국회 본청 인근 계단 앞에서 21대 국회 개원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던져 본청 계단앞에 떨어져 있다. 임현동 기자

16일 오후 정모씨가 국회 본청 인근 계단 앞에서 21대 국회 개원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던져 본청 계단앞에 떨어져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신발 한짝을 던진 정모(57)씨가 19일 구속되냐 마냐 하는 갈림길에 섰다. 정씨는 지난 16일 오후 3시쯤 국회의사당 본관 2층 현관 앞에서 개원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졌다. 그가 던진 신발은 대통령의 수 미터 옆에 떨어졌고, 그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정씨는 체포되면서 “가짜 평화를 외치고 경제를 망쳐서 국민에게 치욕을 줬다”는 ‘투척 사유’를 밝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사안이 중하다”며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현직 대통령을 위협했다는 점에서 정씨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반면 문 대통령이 실제 피해를 당하지 않았고, 위해를 가할 목적이라기보다 항의의 표시인 걸 고려하면 구속은 가혹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18일 “정권에 대한 항의였을 뿐이니 넓은 품으로 포용해달라”고 했고, 배준영 통합당 대변인도 “명백한 위법 행위지만 지금 필요한 건 국민 처벌이 아닌 경호 점검과 정부의 자성”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계란 좀 맞아야 국민들 화 풀리지 않겠나”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을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에게 날계란이 날아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일이 풀린다면 얼마든 맞겠다“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주.월간 사진 공동취재단]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을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에게 날계란이 날아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일이 풀린다면 얼마든 맞겠다“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주.월간 사진 공동취재단]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한 투척 사건은 드물지만, 과거 전직 대통령들이 임기 전후로 투척에 시달린 사례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하다가 갑자기 날아든 날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계란을 닦아낸 뒤 연설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은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튿날엔 기자들과 만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계란을 한 번씩 맞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느냐”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뒤 계란을 맞았다. 1999년 6월 김포공항에서 수속 절차를 밟던 그는 재미교포 박의정씨가 던진 ‘페인트’ 계란에 맞았다. 계란에 빨간색 페인트를 주입한 탓에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은 벌겋게 뒤덮였다. 체포된 박씨는 “IMF 사태로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해 응징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선 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 전 대통령은 “계획적이고 살인적 행위”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이 2007년 12월 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50대 남성이 던진 계란에 왼쪽 허리를 맞았다.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이 2007년 12월 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50대 남성이 던진 계란에 왼쪽 허리를 맞았다.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도 투척 사건의 피해자였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7년 12월, 경기 의정부에서 유세하던 중 승려 복장을 한 50대 남성이 유세 차량에 오르려는 이 전 대통령에게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며 계란을 던져 허리춤에 맞췄다. 이 전 대통령은 파편을 털어낸 뒤 곧바로 유세 차량에 올랐고 “내가 주가나 조작하고 대선에 나왔겠느냐”고 연설을 시작했다. 계란을 던진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돼 경찰서로 연행됐다.

신발 피한 부시 “이런 일도 일어나는 게 자유사회”

가장 극적인 ‘신발 투척’ 사건의 주인공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재임 중이던 2008년 12월, 이라크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부시 전 대통령을 향해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과부와 고아, 미국에 살해당한 이라크 사람들의 몫”이라며 신발 두짝을 잇달아 집어던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날아드는 신발을 모두 피했고, 해당 기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2008년 12월 이라크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조지 부시를 향해 이라크 기자가 신발을 집어던지는 장면 [중앙포토]

2008년 12월 이라크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조지 부시를 향해 이라크 기자가 신발을 집어던지는 장면 [중앙포토]

이라크에서 ‘외국 원수 공격혐의’는 최대 징역 15년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였다.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런 일도 일어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라고 웃어넘겼다. 또 이라크 사법당국에 “신발을 던진 것도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과잉 대응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라크 기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9개월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

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정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오후 2시부터 진행 중이다. 정씨는 이날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일부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정씨를 ‘의인’으로 치켜세우는 움직임도 있지만, 현직 대통령을 불시에 위협했다는 점에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통합당 중진의원은 “국가 원수를 위협했다는 점에서 정씨의 행동이 정당화될 순 없다”면서도 “위협 수위 등으로 볼 때 대통령이 포용하겠단 뜻을 밝힐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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