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후후월드] 매일 20시간씩 일하고 0원···마스크 대란 끝낸 68세 은퇴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스크 재사용,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지난 3월, 미국 테네시주에 사는 한 노교수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습니다. 의사부터 엔지니어까지 의료·보건 분야 전문가들의 전화였습니다. 직업은 다양했지만, 이들의 용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코로나19 확산에 품귀 현상을 빚는 마스크를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겁니다.

N95 마스크 발명한 피터 차이 교수 #밤낮없이 매달려 증산 방법 찾아 #기술 공유로 마스크 수급 안정 #"자문료 주겠다" 제안 모두 사양 #"진짜 영웅은 의료진, 나는 내 일 했을뿐"

N95 마스크를 발명한 피터 차이 테네시대학 명예교수. 2년 전 은퇴했지만, '마스크 대란' 해결을 돕기 위해 다시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마스크 재사용법, 증산 기술을 개발해 공유했다. [AP=연합뉴스]

N95 마스크를 발명한 피터 차이 테네시대학 명예교수. 2년 전 은퇴했지만, '마스크 대란' 해결을 돕기 위해 다시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마스크 재사용법, 증산 기술을 개발해 공유했다. [AP=연합뉴스]

피터 차이(68) 미 테네시대학 재료과학 분야 명예교수, 2년 전 은퇴한 노교수는 그렇게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차이 교수는 1995년 N95 마스크를 개발해 업계에서 '보건용 마스크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30년간 테네시대에서 섬유 제조·공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재작년 은퇴했습니다.

"하루 꼬박 20시간씩 밤낮없이 일했다"   

차이 교수의 연구 열정을 다시 깨운 건 코로나19 입니다. 전 세계 확진자 급증과 동시에 쏟아진 자문요청에 마스크 대란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지체 없이 집 한쪽에 연구실을 만들고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마스크에 묻은 오염물질을 기능 손상 없이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마스크를 끓는 물에 넣어보고, 뜨거운 바람에 쐬어보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급기야 마스크를 빵 굽는 오븐에까지 넣었다고 합니다. 하루 20시간씩 마스크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한 달간의 연구 끝에 고온에서 균을 제거하는 '건열 멸균' 방법을 찾았습니다. N95 마스크를 건열멸균기계에 넣고 65~70도에서 30~60분간 건조하는 기술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차이 교수의 기술을 인증하면서 마스크 재사용에 희망이 보였습니다.

3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속 의료진의 마스크 공급을 위해 긴급 생산을 주문한 3M사의 N95마스크. [로이터=연합뉴스]

3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속 의료진의 마스크 공급을 위해 긴급 생산을 주문한 3M사의 N95마스크. [로이터=연합뉴스]

한 달 만에 마스크 생산량 두 배로

차이 교수의 경쟁력은 이때부터 발휘됐습니다. 바로 '공유' 입니다. 부직포 전문가이자 발명가인 차이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남과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스크 멸균 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했습니다.

보고서가 발표된 뒤 수많은 곳에서 협력·자문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차이 교수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문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N95 마스크 개발자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N95 마스크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협력해 탄소섬유 생산기계를 N95 마스크 생산기계로 탈바꿈했습니다.

차이 교수는 기술자문 요청을 받자마자 연구소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연구원 멀린 테오도르는 "차이 교수는 연구 기간 한 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개인 생활 없이 항시 대기 상태였다는 겁니다. 테오도르는 "늦은 밤에 전화해도 차이 교수와는 언제든 통화가 가능했다. 덕분에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습니다.

멕시코 시티의 한 공장에서 N95마스크 성능 검사를 하고 있다. 피터 차이 교수가 1995년 개발한 N95마스크는 전 세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AP=연합뉴스]

멕시코 시티의 한 공장에서 N95마스크 성능 검사를 하고 있다. 피터 차이 교수가 1995년 개발한 N95마스크는 전 세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AP=연합뉴스]

그 결과 불과 한 달 만에 N95 마스크 생산량이 시간당 4000장에서 9000장으로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차이 교수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가 개발한 이 기술은 N95 마스크 생산 능력을 1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술 공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가 또 다른 연구소에 기술을 전수하면서 N95 마스크 생산 기술 상용화에 앞장섰습니다. 덕분에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만드는 공장도 N95 마스크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생산량이 늘었고 N95 마스크 수급은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보상 따윈 바라지 않는, 코로나 영웅"

차이 교수는 집념의 사나이로 불립니다.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1981년 20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대학 때 전공한 섬유 공학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섭니다.

지난 4월 인도 방송 Wion News와 인터뷰 중인 피터 차이 교수. 차이 교수는 "당신을 영웅이라 부른다"는 진행자의 말에 "나는 단지 원활한 마스크 수급을 도울 의무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고 답했다. [Wion News 유튜브 캡처]

지난 4월 인도 방송 Wion News와 인터뷰 중인 피터 차이 교수. 차이 교수는 "당신을 영웅이라 부른다"는 진행자의 말에 "나는 단지 원활한 마스크 수급을 도울 의무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고 답했다. [Wion News 유튜브 캡처]

미 캔자스 주립대학 박사 학위 시절에는 공부 벌레로 유명했습니다. 모든 이공계 수업마다 등장해 그를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고 합니다. 졸업식에서는 졸업 요건인 90학점을 훌쩍 뛰어넘은 '500학점 이수자'라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이후 테네시 대학에서 섬유 제조·공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차이 교수가 명성을 얻은 건 1995년 정전기식 집진 기술을 개발하면서입니다. 이 기술을 이용해 공기 중 떠다니는 미세 입자까지 거르는 N95 마스크를 개발했습니다. 그 뒤로도 연구는 계속됐고, 정전기식 여과 기술 분야에서만 12개의 기술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차이 교수 활약으로 의료보호 장비 기술이 급발전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번 연구 기간 차이 교수의 월급은 '0'원이었습니다. 수많은 연구소가 자문료를 주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테오도르 연구원은 차이 교수를 "보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인류를 위해 일한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평가에 차이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진짜 영웅은 의료진이다.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다."

관련기사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