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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묶고 딸은 풀고…정권 따라 바뀐 그린벨트 운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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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호 04면

박정희 정부가 1964년 내놓은 ‘대도시 인구집중 방지대책’에서 시작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운명이 달라졌다. 그린벨트가 처음 등장한 건 1971년 7월 30일이다. 이날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고시 447호에는 서울 세종로에서 반경 15㎞의 원형을 따라 폭 1~9㎞에 영구 차단 녹지를 지정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면적은 총 160.7㎢로, 경기도 293.5㎢ 등 서울·수도권 454.2㎢였다. 대한민국 부동산 지도에서 그린벨트가 쳐진 순간이다.

‘무조건 고수’에서 ‘제한적 활용’ #1998년 헌재 판단 후 기조 변화 #지자체, 정부 승인 없어도 해제

그로부터 19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5397㎢가 그린벨트로 묶였다. 전 국토의 5.4%나 되는 엄청난 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하고 녹지 쉼터 제공, 군사적 목적 등 복합적 성격이 강했다. 일각에선 경부고속도로 건설 재원 마련과 관련돼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유가 어찌됐든 그린벨트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린벨트 면적의 80%인 4303㎢가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그린벨트엔 임야만 있는 게 아니다. 사유지인 과수원이나 전답(田畓) 등이 포함돼 있다. 벼락처럼 쳐진 그린벨트에 민심이 호의적일 리 없었다. 개발제한이 걸리면서 땅값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관리했고, 재임 중 단 1㎡의 그린벨트도 풀지 않았다. 그러다 그린벨트의 운명이 바뀐 건 1998년 12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그린벨트 자체는 합헌이나 토지 소유자가 토지를 종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등에까지 피해 보상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하면서다.

이후 들어선 정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그린벨트 정책 기조가 ‘무조건 고수’에서 ‘제한적 활용’으로 선회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부턴 서울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민간기업형임대주택인 뉴스테이를 건설한다며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했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규제 개혁’이라는 취지로 30만㎡ 이하 그린벨트 해제권을 지자체에 부여(2015년 5월)했다. 지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중앙정부의 승인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그린벨트 면적은 3846.3㎢로 당초 지정 면적 5397.1㎢에 비해 28.7%(1550.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167.9→150.7㎢)을 포함한 수도권도 1566.8㎢에서 1409.7㎢로 10%가량이 줄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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