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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수임 논란'에 공수처 위원 사임한 장성근 "흉악범 변론도 사명"

중앙일보

입력

장성근 변호사

장성근 변호사

더불어민주당이 선정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선정된 장성근(59·사법연수원 14기) 전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이 13일 'n번방' 조주빈 공범인 강모(25)씨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지자 자진 사임했다. 장 전 회장은 1월 조씨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딸에 대한 살인을 청부, 개인정보를 알려주고 금액을 지급한 혐의로 구속된 강씨의 변호를 맡았다.

장 전 회장은 2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1990년 당시 변호사업계에선 불모지였던 경기도 수원에서 개업했다. 그는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수원가정법률상담소 이사 등을 맡으며 지역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 '맏형' 역할을 해왔다. 지역 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그가 ‘모두가 꺼리는’ 강의 변호를 맡게 된 이유는 뭘까. 14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씨 변호를 왜 맡았나
3년 전 일이다. 내 자식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담당 의사와 친분을 쌓게 됐다. 그 의사 선생님이 환자 중에 구속된 아이가 있는데, 그 부모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아이가 강씨였다. 당시에도 고교 담임교사를 스토킹해 구속돼 있었다. 변호인으로서 가족과 함께 피고인을 돌보며 변론했고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았다. 지역 사회 변호사로서 이웃이 법적인 조력을 요청하는 데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잘살고 있겠거니 했다. 올해 1월 그 부모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가슴이 덜컥했다. 이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당시에는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이었고, 이름도 나오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 변호를 맡게 됐다.  
거절할 생각은 안 했나
지역 고참 변호사인데, 옆 사무실로 가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는 고유정이라도, 세월호 선장이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수임을 해야 한다. 흉악범이라도 모든 사람은 변호사의 변론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호사는 법적으로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할 사명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들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흉악범을 변호하는 법적 근거다.)
강씨는 어떤가
강씨 가족과 올해 1월부터 카카오톡으로 '강OO 기도방'을 만들었다. (장 전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아이가 다시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같이 기도하고 있다. 강씨를 접견하면서 기도도 해주고 인생 상담도 많이 해주고 있다. 변호할 건 사실 없다. 아이가 조금 정상적이지 않아 조금 더 관심이 간다. 지난번에도 구치소에 수감 중이면서 선생님에게 서신으로 협박했다.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아이가 5년을 복역할지, 10년을 복역할지 모르는 데 본인은 무기징역 해달라고 난리를 친다. 강씨 부모도 이 이후의 삶에 신경이 쓰이는 거다.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는 내가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공수처장 추천 위원을 사임했다
나름대로 직업적으로 맡은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해왔는데, 이 일(강씨 변호를 맡은 일)로 "왜 하필 이런 사람을 선정했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제가 공모에 응한 것이라면 버티겠는데 추천을 받았다. 추천해준 분에게 부담을 주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사임했다. 추천한 분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심정은 어떤가
공수처장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공수처장을 결정할 수 있으니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립적인 인물을 찾으려다 보니까 제가 선택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니 많이 당황스럽고 지금도 마음이 잘 정리가 안 된다. 수임료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한쪽으로 휩쓸리면 계속 그쪽으로 쏠리더라. 그냥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8일 정부서울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 사무실 입구에 간판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8일 정부서울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 사무실 입구에 간판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대한변협 회장 "사퇴할 이유 없다…살인자도 변호할 수 있어야"

장 전 회장의 사임과 관련해서 법조계에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사퇴할 이유가 없는데 사퇴한 점에 대해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떤 사건을 맡았느냐 안 맡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사건을 맡아 어떻게 행동했느냐(가 중요하다)"라며 "변호사는 살인자도 변호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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