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금융 부자에 대한 ‘핀셋 증세’가 현실화했다. 정부가 금융세제 선진화와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명목으로 자산 세제를 개편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세금은 ‘수퍼 개미’와 다주택자 등이 떠안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세·법인세율 인상에 이어 또다시 부자 증세를 통해 재정 부담 보완에 나서는 상황이다.
부동산대책 증세 효과 1조6558억 #주식 양도세로 연간 2조1000억 #다주택자 취득·양도세도 높이기로 #“징벌적 과세, 세수 확대 한계” 지적
12일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16대책과 올해 6·17대책, 7·10대책에 포함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세율 인상에 따른 증세 효과를 연간 1조6558억원으로 추산했다.
우선 12·16대책에 담은 종부세 세율 조정으로 4242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12·16대책은 종부세율을 기존 0.5~2.7%에서 0.6~3%로 올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다주택자뿐 아니라 1주택자의 종부세율도 오른다. 6·17대책에서 발표한 법인에 대한 단일세율 적용 및 6억원 기본공제 폐지로는 2448억원의 종부세수가 증가하게 된다. 다주택자 종부세 최고세율을 현행 3.2%에서 6%로 대폭 올린 7·10대책의 경우 9868억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종부세율이 올라가니 세금이 더 들어오는 것에 대해선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 부담은 전 국민 중 극히 일부만 늘어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기준 국세청이 종부세를 내라고 고지한 대상은 59만5000명이다. 이 중 개인 주택분 종부세 과세 대상자는 50만4000명으로 전체 주택 소유자(2018년 기준 1401만 명)의 3.6% 수준이다.
정부는 또 집을 팔지 않고 증여를 선택하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양도세 부담도 대폭 높이기로 했다. 집을 파는 대신 증여를 택하는 다주택자의 ‘우회로’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취득세의 경우 정부는 7·10대책에서 다주택자의 매매 취득세율을 최대 12%로 올렸다. 현재 부동산 증여 취득세율은 4%다. 다주택자 부동산의 증여 취득세율을 매매 취득세율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양도세율도 7·10대책에서 다주택자에게 중과세율이 적용돼 최대 72%까지 높아졌지만, 증여세 최고세율은 50%여서 납세자들이 증여를 절세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에서도 일부 고소득층의 세 부담을 늘린다. 정부는 2023년 모든 상장 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연간 기준으로 국내 상장 주식 거래를 통해 2000만원 넘게 벌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정부는 연간 2조1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추산했다. 연간 2000만원 넘게 차익을 내는 개인은 약 30만 명 수준이라는 게 정부 집계다. 주식투자자 상위 5%다.
이런 핀셋 증세는 정부가 그간 밝혀온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초(超)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보편증세 대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왔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을 통해서였다.
국책 연구기관은 자산 과세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김유찬 원장은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금융 완화로 인한 저금리 상황에서 자산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자산 소득 및 자산 거래에 대한 과세 강화는 자본의 실물투자로의 유도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계층에 편중된 과세는 정책 목표를 이룰 수 없고, 세수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같은 정책 목표를 위해선 공급 확대 등 시장 논리에 부합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며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과세는 조세 저항만 일으키고 세수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하남현·임성빈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