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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혁진 도피 도와준 비호 세력 있는지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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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옵티머스 펀드 창업자 이혁진씨 행적이 수상하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 행로에 놓여 있다.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법을 어긴 조력이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도 있다. 권력형 비리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뜻이다.

이씨는 2018년 초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의 수사 대상이었다. 횡령·성범죄·조세포탈 등 5개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였다. 그런데 3월에 출국해 처벌을 피했다. 그는 출국 직후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과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사진은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교민들의 간담회가 열린 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며칠 뒤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당시 문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UAE로 갔다. 이씨 동선과 대통령의 동선이 겹친다.

만약 대통령 출장 동행을 명분으로 삼아 출국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와줬다면 이는 중대 범죄다. 법무부와 검찰은 피의자 신분이었던 그가 어떻게 출국할 수 있었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청와대는 왜 이씨가 대통령 주변에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씨가 수행 방문단에 속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사실이라면 누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규명돼야 한다. 이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개인적 일정 때문에 그곳에 갔다”고 주장했는데,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이씨 출국 뒤 검찰은 기소중지 조치만 했을 뿐 해외에서의 체포 및 송환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체류하며 식품유통 사업까지 벌였다. 70억원대 횡령을 비롯한 5개 범죄 피의자가 버젓이 교민회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씨는 2012년 총선에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공천을 받아 출마했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특보로 일했다. 그가 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찍은 사진이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이씨는 “도피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즉시 귀국해 수사에 응하면 된다. 검찰은 이씨가 수일 내로 자진해 귀국하지 않으면 인터폴 수배와 범죄인 인도를 추진해야 한다. 검찰은 또한 이씨 비호 세력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옵티머스 사건을 주로 고소 사건을 처리하는 조사부에 배당했는데, 이 지검장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검찰이 권력층의 ‘호위 무사’ 노릇을 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