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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입맛 잡는 '변종커피'

중앙일보

입력

올해 서른살 회사원인 나. 출근길 아침마다 이대앞 스타벅스에 들리지. 잠깐 차를 세워놓고 카페 라떼 쇼트 한잔에 뉴욕 치즈 케익 한 조각을 곁들여 테이크 아웃. 카페 라떼에는 각설탕 두개에 시내먼 가루를 뿌려.

이게 내 아침식사야.지각할 정도로 늦잠을 자지 않은 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지.

잠깐 잠깐, 스타벅스가 뭐냐고? 카페 라떼는? 게다가 쇼트 ·테이크 아웃 ·시내먼…우와,그러고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라 이거지. 커피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이거 원 어려워서 커피 한잔 마시겠냐고?

사실 난 시간이 넉넉할 땐 저지방 우유에 카페인이 덜 들어간 커피를 써달라고 주문해.여기선 ‘맞춤 주문’이 되니까.커피에 산처럼 크림을 쌓아놓는 위핑(whipping) 은 다이어트에 해로우니까 사양하지.

커피면 설탕 셋,프림 둘이면 됐지 뭐가 그리 까다롭냐고 물을테지.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커피를 마신다니깐.

◇커피 열풍=젊은 층에 ‘커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소수 애호가들만 즐기는 것으로 알던 에스프레소 커피가 다양한 변종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출 ·퇴근길과 점심시간에 대학로 ·명동 ·압구정동 등에서 커피전문점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즐기는 젊은 직장인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인터넷에도 최근 커피 동호회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커피 시음기를 올리는 것은 기본.맛있는 커피를 맛본다며 해외로 원정까지 떠나는 열혈파까지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는 커피 동호회는 물론,특정 커피전문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10여개 가량 개설됐다.

◇커피전문점 러시=열풍의 주역은 미국의 대표적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에서 생겨 현재 전세계적으로 20개국 3천4백여곳에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99년 이대점을 1호로 서울에 명동 ·압구정동 등에 10개의 체인을 열었으며 올 하반기부터는 지방에도 점포를 열 계획이다.

스타벅스 못지 않게 시애틀에서 오래된 체인인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SBC) 도 지난달 중순 명동점을 개장,첫 선을 보였다.

올해 안으로 10여개의 매장을 확장할 예정. 이탈리아 체인인 세가프레도도 지난해 젊은 층이 몰리는 코엑스몰 ·센트럴시티 등에 문을 열었으며 역시 올해 안으로 서울에 10개 매장을 더 연다.

점포당 하루 1천5백명에서 많게는 2천5백명까지 찾는 스타벅스의 경우 90% 이상이 20대 초반∼30대 초반의 젊은층이다.하루 평균 1천5백여명의 고객을 맞는 SBC도 마찬가지.

세가프레도 마케팅사업부 김경호씨는 “세가프레도 명동점의 경우 80% 이상이 단골 손님”이라고 말했다.

◇에스프레소,그 변화무쌍함=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메뉴의 기본은 에스프레소.맛이 깊고 진해 ‘커피의 위스키’라고 불린다. 우리 입맛에는 쓰고 낯설다. 젊은이들은 ‘한약같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를 변형한 형태가 인기를 끈다.카페 라떼(우유를 넣은 커피.카페오레라고도 한다) ,카페 모카(초컬릿 시럽과 생크림을 넣어 희석한 커피) ,카푸치노(우유와 계피가루를 곁들인 커피) 등이 그것.

여기에 에스프레소에 초컬릿 시럽 ·아이스크림 ·아몬드 등을 넣은 모카 프로스티, 에스프레소와 위스키 또는 브랜디를 혼합한 카페 로열까지 더하면 종류는 더 늘어난다. 이름 앞에 ‘아이스’가 붙으면 얼음을 부셔넣은 찬 음료를 뜻한다.

◇모르면 못 마신다=종류가 많다 보니 초행길에는 원하는 커피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커피의 종류를 정했다고 해도 아직 넘어야할 산은 많다.순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1.커피의 종류를 고른다 2.커피의 양을 정한다 3.자리에서 마실 건지 밖으로 가지고 갈 건지 정한다.

커피 컵의 크기는 쇼트(short) -톨(tall) -그랑드(grande) 등 세 단계다.

각각 812 ·16온스다 .‘온스’라는 단위부터 얼른 감이 오지 않는다. 보통 가볍게 커피 한잔 하고 싶다면 쇼트가 적당하다.커피를 밖으로 가지고 가길 원한다면 ‘테이크 아웃’이라고 말한다.

◇왜 인기?=스타벅스 홍보담당 양재선씨는 커피 열풍의 원인을 “이제는 젊은이들이 커피의 질과 맛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커피 한잔을 마셔도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를 마시겠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변종 커피’의 확산에는 해외 유학파의 공도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90년대 중반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닌 김모(31·여) 씨는 “유학시절 즐겨찾던 스타벅스가 국내에 들어온 걸 보고 반가웠다”며 “커피를 마실 때마다 뉴욕 생활이 떠올라 자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기의 또다른 요인은 타인과의 차별화다.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는 이유는 ‘나와 남을 구별짓기 위해서’. 스타벅스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은 신세대를 구세대와 구별짓는 일종의 표지다.테이크 아웃은 이러한 ‘구별짓기’를 더 쉽게 도와주는 방식인 셈이다.

◇문화를 마신다=커피가 원래 해외문물이긴 하지만 최근의 커피전문점들은 인테리어는 물론 재료까지 몽땅 수입, ‘커피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조금치도 한국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스타벅스나 SBC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미국 현지에서 수입한 것. 커피 원두는 물론, 종이컵 ·냅킨 ·빨대 등이 모두 ‘외제’다.

스타벅스는 녹색을 기본으로 원목을 사용한 인테리어가 전세계 공통이다. SBC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편안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라는 기본 컨셉은 같다. 매장을 꾸밀 때도 가구 색깔이나 모양까지 일일이 본사에 보고, 허가를 받는다.

매장의 크기는 국내에 들어오면서 미국 현지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SBC와 스타벅스의 명동점은 2백석 규모의 초대형 매장. 세계최대란다.

테이블 5∼6개에 불과한 미국 매장과는 아주 다른 모습.“한국을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게 SBC 관계자의 전언.

예로부터 고유의 차(茶) 문화가 발달된 우리나라에서 커피 바람이 뜨겁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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