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5개월 연속으로 "경기 위축이 지속 중"이라고 진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수출 제조업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본격화되는 코로나19 피해
KDI는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으로 크게 퍼진 5~6월 상황을 분석했다. 이전까지 KDI가 가장 오래 ‘경기 위축’ 판단을 유지한 건 2019년 7월부터 4개월간이다. 당시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 전례 없는 대외 악재가 겹쳤다. KDI는 그때보다 경기가 나쁜 상황이 오래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경기 위축의 원인으로 "코로나19 전 세계적 확산에 따른 대외수요 감소"를 꼽았다. 대외수요 감소는 한국 수출 제조업의 부진을 의미한다. 내수 부진으로 시작한 코로나19의 경제 피해가 제조업으로 본격 확산했다는 진단이다.
"팔 데가 없다"… 제조업 가동률 IMF 때 보다↓
실제 제조업의 위기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5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전월과 비교해 하락세(68.3→63.6%)가 더 심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1월(-62.8%)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최저다. IMF 외환위기 때 가동률 최저 기록(98년 7월 63.2%)이 이번에 깨졌다. 제조업 재고율도 전월(120.0%)보다 8.6%포인트 높은 128.6%를 기록했다. 공장은 멈추고 재고만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부진의 원인은 결국 "팔 데가 없다"는 데 있다. 하루 평균 수출액은 코로나19가 본격 유행한 지난 4월 두 자릿수로 감소 폭(-18.7%, 전년 동월 대비)으로 내려앉은 것을 시작으로 5월(-18.3%)과 6월(-18.5%) 모두 비슷한 감소세를 유지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 실적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보다도 사정이 더 나쁘다. 특히 주력산업인 자동차(-33.2%), 석유제품(-48.2%) 수출 감소가 두드러졌다.
제조업 고용감소 더 커져
제조업의 위기는 고용 위기로 이어졌다. 5월 취업자 수는 전월보다 감소폭이 축소됐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생활 방역 전환 등 일시적 정책 효과다.
경기 위축 0%대 저물가…집값만 뛰어
경기 위축으로 저물가도 지속했다. 전월 대비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0%)은 5월(-0.3%)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0%대를 유지했다. KDI는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물가(0.2%)도 낮은 상승세 보이면서 당분간 저물가 현상은 지속할 가능성 있다"고 전망했다. 저물가가 오래가면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출길이 막힌 제조업체들로서는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부분이다. 다만 최근 부동산 시장 과열로 아파트 매매가격(0.16%→0.58%), 전셋값(0.15%→0.41%)은 크게 뛰었다.
소비는 개선…일시적 정책효과
소비는 깜짝 개선됐다. 5월 소매판매액은 1.7% 증가하면서 전월(-2.2%)보다 크게 올랐다. 특히 자동차(27.7%) 판매 상승이 두드러졌고, 업종별로는 도소매업(-7.6%→-4.5%), 숙박 음식점업(-24.6%→-14.0%) 감소세가 완화됐다. 이런 개선은 재난지원금 지급 및 개별소비세 인하, 생활방역 전환 등 정부 정책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이 떨어지고 코로나19가 2차 유행할 경우 수치가 다시 하락할 수 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관건"
결국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우리나라 주요 수출시장의 소비 심리가 다시 좋아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민간 소비만 일부 개선됐을 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서 경기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도 4월 산업생산(-28.0%), 소매판매(-19.6%)가 강도 높은 사회적 통제를 시행한 국가 중심으로 큰 폭의 감소세 보였다. 코로나19 2차 유행이 시작된다면 이런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KDI도 "국내·외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증가는 경기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 있다"며 향후 방역 상황에 따라 경기 위축이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