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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정치 검은 돈이 흐르는 ‘머니랜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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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21면

머니랜드

머니랜드

머니랜드
올리버 벌로 지음
박중서 옮김
북트리거

영국 런던에는 특이한 버스 관광이 있다. 이름하여 ‘런던도둑정치관광(London kleptocracy tours)’이라는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클라크 게이블이 살던 집이나 스칼렛 요한슨의 단골 미장원 등을 안내하며 다니듯, 런던 시내에 있는 제3세계(러시아 포함)의 도둑 정치가들이 소유한 부동산을 찾아다니는 투어다. 이들 주택·아파트는 대부분 비어있다. 그것이 사람이 살기 위한 주택이 아니라, 실제로는 “주택의 모습을 갖춘 은행계좌”인 까닭이다.

이 부동산들은 세무공무원조차 진짜 주인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익명 구조물의 소유다. 런던의 이튼 스퀘어 거리에만 그런 부동산이 86채나 되는데, 그중 30채 가량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유고 16채는 저지섬, 13채는 건지섬 소유로 돼있다. 비어있는 주택이 많다 보니 2017년 한 무정부주의 단체의 행동대원들이 한 빈집에 점거하고 노숙자 쉼터로 공개한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도 있다.

영국 런던의 이튼 스퀘어. 자산 세탁 목적의 정치 엘리트 소유 부동산이 많다. [사진 CVB]

영국 런던의 이튼 스퀘어. 자산 세탁 목적의 정치 엘리트 소유 부동산이 많다. [사진 CVB]

부동산뿐만 아니다. 런던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로본드’는 공식적으로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발행된 채권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면 4%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자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이자는 룩셈부르크에서 지급한다. 원천세를 피해 차용인은 이탈리아 국영 도로공사인 아우토스트라데 명의로 돼 있다.

이 ‘마법의 종잇조각’이 나오기 전에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금고에 쌓여있던 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숨겨둘 뿐이었다. 하지만 유로본드만 구입하면 그 돈을 어디든 가져갈 수 있고 어디서든 상환할 수 있으며 무과세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역외(offshore)’라는 개념을 이용해 부패한 권력자나 부자들의 비밀스러운 돈을 숨겨주고 조세를 피해주며 세탁해주는 ‘자산 보호 산업’을 저자는 ‘머니랜드’라 부른다. 머니랜드의 주인공은 자국에서 돈을 훔쳐 머니랜드로 가져오는 도둑 정치가들이 아니다. 그들의 부정행위를 묵인하고 거기에 편승해 이득을 챙기는 선진국의 엘리트 은행가·변호사·회계사·홍보전문가·로비스트들이 곧 주역이다.

머니랜드에는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그 비용은 머니랜드 밖에 사는 사람들이 지불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것이다.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저자는 ‘끌로 파는’ 취재를 통해 전세계적 층위에 걸친 머니랜드의 실상을 폭로하며, 그것이 쓰러뜨린 세계를 바로 일으켜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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