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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 소문 비타민C 열풍

중앙일보

입력

때아닌 비타민C 열풍이 일고 있다.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의대교수가 "비타민C가 여러 질병에 효능이 있다" 고 하자 이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약국에 몰려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약국에는 주문 양이 평소의 20~30배나 되는 가운데 박스 단위로 사재기하려는 고객들로 10여분만에 재고가 바닥난 곳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타민C의 효능과 섭취 권장량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어 '비타민C 붐' 이 자칫 약물 오남용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수요 폭발=대형 약국들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 5가에는 10일 대부분의 약국에서 비타민C 관련 제품이 품절됐다.

독일약국 약사 오희영씨는 "지난 주말 비타민C 단일 제제 2백정짜리 30여박스가 모두 팔렸다" 고 말했다.

보령약국 약사 김광기(金光基) 씨도 "평소의 30배인 3백여갑씩 팔려나가 재고가 없는 상태" 라며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이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고 말했다.

본사 취재팀의 확인 결과 서울과 경기도 일산.분당 등 수도권 지역 약국 20여 곳도 고객들이 박스 단위로 사들여 재고가 동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관련 제품을 만드는 K.J.Y제약사들은 생산라인을 풀 가동하는 등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K제약사 영업이사 조영조(曺永祖) 씨는 "이미 비타민C 재고가 바닥났고, 두 달 물량까지 약국에서 예약이 들어왔다" 며 "지난 7, 8일 이틀 동안 한달치 물량이 동났다" 고 말했다.

◇ 효능 논란〓비타민C 열풍은 지난주 한 TV 아침 프로에 출연한 서울대 이왕재(李旺載.45.해부학) 교수가 "비타민C를 많이 섭취하면 면역력이 증가하고 고혈압.중풍.심장병 등에 치료 효과가 있다" 고 말하면서 촉발됐다. 그는 2~3개월 전부터 일부 지역에서 특강을 통해 이를 강조해 왔다.

TV프로가 방영된 후 서울 상계동 한 병원에서는 40대 혈압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혈압약은 안먹겠다" 며 비타민C를 달라는 일까지 생겼다.

비타민C 효능 논란은 미국에서 1950년대에 벌어졌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이 비타민C의 치료 효능을 주장하며 많은 양을 섭취하는 '메가도스' 용법을 주창, 당시 미국 전역에 비타민 파동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미국 미네소타주 메이요클리닉 연구진이 "다방면에 걸쳐 연구했지만 폴링 교수의 주장과 같은 효과는 없다" 고 발표하는 등 효능 논쟁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서울 백병원 김성원(金聖元)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타민C가 영양제로서 여러 효능이 있지만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 효과는 검증된 바 없다" 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조비룡(趙飛龍) 교수는 "혈관세포 실험에서 동맥경화 예방 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메가도스 용법의 인체실험 결과 효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고 말했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청 박전의(朴佺義) 의약품관리과장은 "비타민C는 수용성이라 몸에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하게 보지는 않는다" 며 "그러나 과다 복용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자료를 검토해 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 고 말했다.

장정훈.김승현.정효식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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