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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종식, 유엔사 변화 필요" 6·25 전날 총대 맨 외교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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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정전협정의 종식을 통한 유엔사의 역할 변화”를 언급하며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24일 CSIS-KF 주관 '한미 전략포럼'

조 차관은 이날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협력단(KF)이 공동 주최한 ‘제5회 한미전략포럼’에서 “동등한 한·미 동맹으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조 차관은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의 필요성을 설명한 뒤 곧바로 “유엔사령부(UNC)의 역할과 지위도 (한·미) 동맹 진화에 있어 중요한 주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유엔사는 정전협정(체제)을 지난 70년간 유지해왔다”며 “한국은 이런 노력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들은 한국이 스스로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중심적인 위치에 설 시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차관은 “이는 현재 상태와 같은 정전협정 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에 의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청와대와 통일부, 여권 일각에서는 대북 물자 반입을 깐깐하게 따지는 유엔사에 대해 불만 섞인 시각이 있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대담에서 “유엔사가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지난해 9월 대학 강연에서 “한·미동맹을 살리려다 남북관계가 망가졌다. 유엔사가 남북관계의 장애물”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해리 해리스(왼쪽) 주한 미국대사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해 6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해리 해리스(왼쪽) 주한 미국대사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해 6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조 차관이 “현재의 정전협정 체제 종식”을 주장한 것은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를 되새긴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 “올해 안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차관의 유엔사 발언은 대북 정책이 아닌 ‘동등한 한·미동맹’과 ‘전작권 조기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나왔다는 점에서 맥락이 다소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사의 역할·지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은 “정전협정에 변화를 주는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검토가 가능하다”(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2018년 6월)는 입장이다. 오히려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는 워싱턴이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나온다.

지난해 9월 북한측 인원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의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군사분계선(MDL) 남쪽까지 내려와 공사를 진행 중인 모습을 유엔군사령부 경비대 대원 2명이 지켜보고 있다. [유엔사 제공]

지난해 9월 북한측 인원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의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군사분계선(MDL) 남쪽까지 내려와 공사를 진행 중인 모습을 유엔군사령부 경비대 대원 2명이 지켜보고 있다. [유엔사 제공]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셉 던퍼드 미 합참의장이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현 국무부 부장관)에게 “어떤 형태의 종전선언도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적 효력은 없어야 한다”는 건 정치적 선언을 넘어 유엔사 주둔 근거가 된 정전 협정은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조 차관의 이 같은 발언은 한·미 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소식통은 “조 차관 발언은 볼턴 보좌관의 회고록 이후에 나왔다”면서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인식이 정부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조 차관의 연설은 ‘저쪽에서 이만큼 요구하면, 우리도 이 정도는 요구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 차관의 이번 연설문은 실무 부서에서 초안을 작성해 조 차관이 최종 검토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조 차관 개인의 시각보다 정부 부처 차원의 메시지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며 “엄밀히 외교부 소관 사항이 아닌 전작권 전환, 유엔사 문제까지 거론한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지금까지 한미 동맹 이슈 전반에서 청와대가 앞에 나서는 모양새였다면, 이제는 외교부가 등판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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