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에 대해서..

중앙일보

입력

병원에 있다보면 "선생님, 신문에서 보니까 젖을 안먹이고 서른살 넘어서 첫 아이를 낳으면 유방암에 잘 걸린다던데 제가 그렇거든요.

어떡하면 좋아요?" 하면서 숨을 헐뜩이며 달려오신 분이 종종 있다. 몇 일전에 왼손잡이가, 또 간접 흡연자가 유방암에 잘 걸린다는 뉴스를 보았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기에 해당되는데 내가 유방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에 시달릴 것인가?

요즘은 유방암 검진을 받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의사가 만지기 어려운 것도 본인이 만져서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유방암 환자들도 예전보다 훨씬 조기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그동안 언론 매체나 강연을 통해서 유방암에 대해 홍보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헌은 지대한 것이다. 유방암의 증상에 대한 텔레비젼 방송이 나간 직후에는 "나도 그런 것이 있는데요"하면서 유방암 검진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

그러나 게중에는 전혀 얼토당토안한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홍보를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는 말이다.

유방암의 위험인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엄마 젖을 안 먹였다던지, 30살 넘어서 첫 아이를 낳았다던지, 초경을 빨리 했다던지, 폐경이 늦었다던지 하면 유방암의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높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가하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시속 80km로 달리던 차가 시속 160km로 두 배로 속도를 높여 달리면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그러나 시속 10km로 달리던 차가 시속 20km로 두 배로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사고의 위험이 그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다.

위험도 증가의 의미와 함께 이런 위험 인자들중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에 또다른 문제가 있다. 물론 비만하지 않게 운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가능하면 엄마 젖을 먹일려고 애쓰면 좋다.

그러나 초경을 늦게 오게하려고 영양 섭취를 줄일 수는 없다. 폐경의 나이는 개인이 조절할 수 없을 뿐더러 고대 그리이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일정하다. 유방암 환자가 없는 집안에 골라 태어날 수도 없다.

유방암을 막기위해 몸의 호르몬 상태를 항상 임신 상태인 것처럼 만들어주기 위해 약을 먹일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전세계 모든 여성이 25살이 되기 전에 임신을 하면 유방암을 17% 줄일 수 있다는 통계 놀음도 있다.

그러나 이러면 여성 인력 활용과 여성의 가치 실현의 기회 상실이라는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왼손잡이에서 유방암이 많은 것은 태아시절에 왼손잡이가 될 것으로 결정이 되고, 또 이런 결정과 관련된 인자가 자궁내에서의 호르몬 환경에 변화를 주어서 유방암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방암의 위험 인자는 의사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문제이다. 검사에서 미심쩍은 소견이 있는 경우에 위험 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더 쳐다보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면 된다. 이런 위험 인자가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조치를 하는 것도 없다.

위험 인자에 대한 계몽이 적정한 수준의 경각심을 주는 것을 벗어나 과도한 공포를 초래하게하여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런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이 유방암에 많이 걸린다.'는 사실보다는 '유방암의 75%는 이런 위험인자가 전혀 없는 사람들한테 생긴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위험 인자가 없으니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던지 '이런 위험 인자도 없는데 왜 내가 암에 걸렸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이런 위험 인자가 있다고해서 모두 암이 생길 듯이 무작정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이런 위험 인자가 없다고해서 나는 유방암에 안 걸릴 것이라면서 방심할 수도 없다.

모두들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가슴을 만져보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고, 그러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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