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경북~충북 돌아다닌다, 꿀 훔쳐먹고 달아난 반달가슴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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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 km53. [중앙포토]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으로, 이번엔 민주지산.”

2015년 지리산 방사 'KM53' 충북 영동서 발견 #지리산 떠나 수도산 이동하다 교통사고도 #경북 수도산에서 동면후 영동으로 넘어와 #종보전원 "번식기 행동·영역 확장 가능성"

최근 충북 영동군의 양봉농가에서 벌꿀을 훔쳐먹고 달아난 6살 반달가슴곰 ‘KM53’은 떠돌이 곰으로 불린다.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이후 도토리와 머루, 산딸기가 풍부한 서식지를 놔두고 60㎞ 떨어진 경북 김천의 수도산과 구미 금오산을 오가며 활동했다. KM53은 지리산을 두 번 탈출하는 과정에서 차에 치인 아찔한 경험도 갖고 있다.

지난해 수도산에서 겨울잠을 잔 KM53은 올해 새 여행지를 찾아 나섰다. 지난 15일 수도산을 출발해 북쪽으로 20㎞를 걸어와 닷새 뒤인 20일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 도착한 것이다. 반달가슴곰의 활동 반경이 15㎞인 점을 고려하면 KM53이 보여주는 행동은 상식 밖이라는 평가다.

영동에 도착한 이 곰은 지난 22일 오전 영동읍 화신2리 양봉농가에 내려와 벌통 6개 중 4개를 부수고 꿀을 먹어 치운 뒤 달아났다.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이사현 복원기획부장은 “KM53은 벌꿀을 먹고 자취를 감춘 뒤 남쪽 6㎞ 지점의 영동 삼봉산 상부에서 발견됐다. 원래 왔던 길과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고 있으며,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25일 밝혔다. 이 부장은 “KM53이 겨울잠을 잤던 수도산으로 갈 수도 있고, 먹이가 풍부한 덕유산국립공원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달가슴곰 KM53이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이동한 경로. [사진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KM53은 2015년 1월에 태어나 그해 10월 27일 전남 구례에 있는 지리산에 방사됐다. 이 곰이 첫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때는 2017년 6월 15일이다. 당시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포획됐는데,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 경남 함양과 거창을 거쳐 무려 60~70㎞를 이동한 것이다.

KM53은 다시 지리산으로 옮겨져 적응훈련을 했고, 이듬해 3월까지 이곳에서 동면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이 곰은 그해 5월 5일 수도산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대전-통영 고속도로 함양분기점 인근에서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버스에 치여 왼쪽 앞발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치료를 마친 KM53은 2018년 8월 27일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수도산에 방사됐다. 생물종보전원 관계자는 “KM53은 지난해 6월께 수도산을 떠나 경북 구미 금오산으로 갔다. 이곳에서 19일 동안 먹이활동을 한 뒤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와 겨울잠을 잤다”고 말했다.

KM53의 떠돌이 생활을 두고 전문가들은 영역확장 차원의 활동이나 암컷 찾기를 위한 행동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금껏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은 51마리, 새끼를 포함하면 69마리에 달한다. 한 전문가는 “반달가슴곰은 만 5살부터 6~8월 사이에 번식 활동을 하는데 KM53은 딱 그 시기가 됐다”면서도 “지리산에 암컷 개체가 많음에도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새 서식지를 찾아 떠난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생물종보전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KM53의 행동을 비춰볼 때 워낙 호기심이 강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며 “어딜 가는지, 어떤 이유로 가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계속 위치 추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동군과 생물종보전원은 이동 범위를 넓힌 반달가슴곰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읍·면과 마을이장, 주민들에 ‘반달가슴곰 출현시 행동요령’이 담긴 공문을 보내 주의를 당부했다. 공문에는 야영장과 산악지역 단독가옥 음식물 관리, 스프레이·종·호루라기 등 개인 안전장비 구비, 양봉농가 피해예방 등 내용이 담겼다.

영동=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