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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게 굴자”…전대 앞두고 몸값 올리는 민주당 강원ㆍ영남 동부라인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김두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 [뉴스1,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두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 [뉴스1, 연합뉴스]

“우리 1석이 수도권 10석과 맞먹습니다. 우리 이제 좀 비싸게 굽시다.” 

23일 열린 영남·강원 출신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해돋이모임’ 첫 만찬 회동에서 함 참석자가 꺼낸 말이다. 이 말에 다른 참석자들은 “우리 엉덩이를 좀 무겁게 하자”, “당권·대권 주자도 우리(영남·강원) 표를 얻어야 이길 수 있지 않겠냐”며 맞장구를 쳤다.

해돋이모임은 민주당에게 험지인 영남·강원 동부 벨트의 당내 입지를 키우고 지역 현안 추진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영남 지역에서 7명(박재호·전재수·최인호·이상헌·김두관·민홍철·김정호), 강원 지역에서 3명(이광재·송기헌·허영) 등 총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이들 중 경남 양산을과 강원 원주갑이 각각 지역구인 김두관 의원과 이광재 의원이 모임의 주축이다.

이날 3시간 여 이어진 모임에서 한 의원은 8월 전당대회 및 차기 대선과 관련해 “특정 후보에게 너무 붙지 말고, 좀 더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선택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대선 주자 여론조사 1위인 이낙연 의원, 대구 출신 김부겸 전 의원, 그리고 우원식·홍영표 의원 등이 당권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신중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 참석자는 “서로 돕는 의원들이 다 달라서 ‘누굴 지지할 거냐’고 얘길 꺼낼 수 없었다”며 “성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우리가 의견을 모으면 우리 지역을 위해 당권 주자들이 신경 쓸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5월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박재호, 전재수 의원(왼쪽부터)이 정권교체를 자축하며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5월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박재호, 전재수 의원(왼쪽부터)이 정권교체를 자축하며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PK(부산·경남)는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친노·친문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강원의 경우 대구·경북(TK)에 이은 민주당 험지로 꼽히지만 19대 국회 때 0석이던 의석수를 21대 국회에 3석으로 늘리면서 민주당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그런데 해돋이모임 소속 의원 중 지역 민원 해결에 힘을 쓸 수 있는 국토교통위원회에 배치된 이는 허영 의원 1명 뿐이다. 당내 ‘홀대론’이 거론되기도 했던 만큼 전당대회와 대선 국면에서는 좀더 큰 목소리를 내서 몸값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돋이모임이 이날 영남·강원 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추진을 위해 당·정·청 예산정책협의회를 열 것을 당에 공식요청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선 동해선 철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불러 현안을 듣겠다는 계획이다. 이광재 의원은 모임에서 “북극항로가 생기면 동해안 라인의 중요도는 커진다. 영남·강원 의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남 지역 최대 현안인 동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바람도 크다. 지난해 12월부터 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때 내려진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 PK 의원들은 검증위가 김해공항 확장안 대신 신공항 건설론에 힘을 실어줄 것을 촉구하면서 총리실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한 참석자는 “PK 의원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며 “총리실의 판단이 임박한 것 같다”고 했다.

해돋이모임이 특정 계파를 형성하는 단계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합일된 목소리보단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 후보를 달리할 조짐이 보여서다. ‘친문’ 최인호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낙연 의원을 사실상 공개지지했고, ‘친노’ 이광재 의원은 이낙연 의원을 물밑에서 돕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박재호 의원은 가까운 김부겸 전 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김두관·전재수 의원은 아직 뚜렷하게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뚜렷한 PK 출신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영남권에선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읽힌다. 김 지사 발목을 잡고 있던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항소심 재판에 최근 변수가 생기면서다.

지난 23일 오전 김 지사는 김두관·민홍철·김정호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22일 있었던 항소심 18차 공판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공판에선 김 지사가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특검 주장을 반박하는 증언이 나왔다. 김 지사 측은 “시연이 있었다고 특검이 주장하는 시간대에 김 지사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은 저녁 식사를 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닭갈비집 사장의 증언이 있었다.

김 지사가 재판 상황을 설명하자 한 참석자가 김 지사에게 “도정과 재판을 병행하느라 많이 힘드시겠다”고 위로를 건넸다. 이에 김 지사는 “이젠 익숙합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고 한다. 한 PK 의원은 “이번 증언이 재판의 중요한 반전이 될 것 같다”며 “김 지사를 두고는 차기 대선보다는 차차기라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최근에 기류가 많이 바뀌고 있다. 김 지사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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