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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선원은 증상 있어도 감췄다…코로나 검역 뚫린 부산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낮 부산 감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선박에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러시아 선원들이 부산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 위해 이송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3일 낮 부산 감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선박에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러시아 선원들이 부산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 위해 이송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6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러시아 선박이 부산항에 입항하기 전 유증상자 발생 사실을 검역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국립부산검역소 측이 승선해 실시하는 ‘특별검역’을 하지 않은 채 검역증을 발급했고, 그 사이 항운노조원 등이 작업을 해 감염 우려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항 선박 검역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22일 오후 러시아 선원 16명 확진 판정 #부산항 입항하기 전 유증상자 없다 신고 #검역소도 승선 검역하는 특별검역 안해 #

 국립부산검역소는 코로나19 확진자 16명이 발생한 러시아 선적의 냉동수산물 운반선인 아이스스트림호(3403t)가 유증상자 발생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감염병예방법상 감염병 1~2급의 경우 신고의무 위반과 거짓 신고 때는 500만원 이하, 감염병 3~4급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처분을 할 수 있다. 코로나 19는 1급 감염병이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아이스스트림호는 지난 6월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출발해 19일 부산항에 도착했다가 21일 오전 8시 감천항에 정박했다. 하지만 부산항에 입항하면서 선박대리점을 통해 지난 20일 검역소에 제출한 ‘전자검역신청서’에는 선원 가운데 코로라19 유증상자가 없다고 신고했다. 부산항 입항 선박은 규정에 따라 입항 1~2일전 검역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검역소는 부산항 입항 선박이 전자 검역신청서를 제출하고 하선자(입국자)가 없어 전자검역서 만으로 검역증을 발부했다. 전자검역은 검역관이 배에 타지 않고 전산으로 관련 서류를 미리 받아 도착과 동시에 검역증을 내주는 방식이다. 하선자가 있으면 공항처럼 별도 검역절차를 거친다.

 검역소 측은 뒤늦게 이 선박에 코로나19 유증상자가 있는 사실을 알았다. 국내 선박대리점 관계자가 21일 오전 러시아에서 선박이 출항하기 전 선장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교체된 사실을 유선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검역소 측은 22일 오전 11시 선박에 승선해 특별검역에 나서 유증상자가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진단검사를 벌여 16명의 감염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검역소 측이 승선해 특별검역을 하기 전 이미 항운노조원이 21일 탑승해 하역작업 등을 했다. 또 선박 수리업체와 도선사 직원, 세관·농산물품질관리원 공무원 등이 선박에 승선해 업무를 처리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나온 러시아 선박 아이스스트림호가 23일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 정박중이다.송봉근 기자

 검역소 측이 특별검역으로 감염자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러시아 선원 접촉자인 항운노조원 등이 자가격리되지 않는 아찔한 순간이 발생할 수 있었다. 검역소 관계자는 “선박 대리점에서 유선으로 선장이 확진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으면 러시아 선박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러시아 선원들은 좁은 통로를 오가는 등 선박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밀접접촉해 집단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이 선박에서 화물 하역량을 확인하고 작업을 한 항운노조원 등 접촉자 92명이 자가격리됐다. 이 선박 바로 옆에 정박한 러시아선적 아이스크리스탈호(3246t) 선원 21명도 아이스스트림호 선원과 접촉한 것으로 23일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아이스크리스탈호에서 작업한 항운노조원 63명은 능동감시(하루 2회 증상확인)를 받고 있다.

 문제는 부산항에 입항하는 다른 선박에서의 추가 감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환자 발생이 많은 러시아 등 전 세계에서 선박이 입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23일 오전 9시 현재 부산 감천항에 정박 중인 선박 67척 중 33척이 러시아 선적으로 밝혀졌다. 부산항 전체 입항 선박은 하루 80~90척에 이른다.

부산시 보건당국이 23일 낮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서 러시아 선원들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하기위해 버스에 태우고 있다.송봉근 기자

부산시 보건당국이 23일 낮 부산 사하구 감천부두에서 러시아 선원들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하기위해 버스에 태우고 있다.송봉근 기자

 이들 선박의 검역을 위해 검역소 직원 35명이 동원되고 있으나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검역소 측은 부산항의 30여개 부두에 정박한 선박 검역을 위해 서무과 직원을 동원하곤 한다.

 국립부산검역소 관계자는 “부산항 입항 선박이 너무 많아 유증상자가 신고되거나 하선하는 입국자가 있을 경우 승선해서 검역하는 특별검역을 하고 있다”며 “부산항 입항 선박에 대한 전수 검역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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