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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 답 바꾼 숙명여고 교사, 법정서 "쌍둥이 억울할 수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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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고등학교 정문. [연합뉴스]

숙명여자고등학교 정문. [연합뉴스]

“처음엔 아이들을 의심했지만, 성적 상승을 사실 조회로 확인해서 어쩌면 사실이 아닌 거로 고초를…. 억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17일 오전 아버지가 유출한 정기고사 답안을 외워 시험을 쳤다는 의심을 받는 숙명여고 쌍둥이 딸의 재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는 숙명여고에서 사회문화 과목을 가르치는 김모 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교사는 2018년 쌍둥이 언니 현모양이 치른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사회문화 과목을 출제했다. 김 교사는 시험 하루 전인 2018년 7월 3일 변별력 향상을 위해 이미 출제했던 3개 문항의 문제와 답을 바꿨다. 시험은 일부 기존 답과 문제가 바뀐 채 시험지를 재인쇄해 치러졌다.

시험 하루 전 바꾼 18ㆍ20ㆍ22번   

2018년 서울 수서경찰서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서울 수서경찰서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변호인의 설명에 따르면 언니 현양은 김 교사가 바꾼 18, 20, 22번 문항 중 18번은 맞추고 20번과 22번은 틀렸다. 현양이 틀린 20번 문항의 정정 전 정답은 2, 3번인데 김 교사의 정정 후 2, 3, 5로 바뀌었다. 22번은 정답은 바꾸지 않고 문제만 바꿨다. 현 양은 다른 답을 체크해 틀렸다.

이 부분을 바라보는 검찰과 변호인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변호인은 “현 양이 시험지에 20번을 2, 3, 5로 답을 체크하고 OMR 카드도 2, 3, 5를 마킹한 뒤 실수로 5번을 수정 테이프로 지웠다”고 주장한다. 원래 22번 문항의 답 5번을 수정 테이프로 지우려 했는데, 실수로 20번 문제의 답 5번을 지웠다는 주장이다. 현양은 사회문화 시험 직후 "OMR 카드 리딩이 잘못된 것 같다"며 담임선생님에게 이의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 점을 들어 변호인은 “외운 답으로 시험을 쳤다면 왜 시험 직후 OMR 카드 리딩이 잘못됐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5번을 잘못 지운 걸 확인했겠느냐”라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김 교사에게 “현양은 20번 문제 OMR 카드에 정정 전 정답인 2, 3만 남겨두고 5번은 지운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현양이 미리 외운 답으로 시험을 쳤으니 김 교사가 답을 고쳤는데도 정정 전 정답을 써서 틀린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김 교사는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 현양이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사회 문화 과목은 유출됐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22번 문항을 근거로 들었다. 김 교사는 “22번은 정답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사전에 유출된 답을 알았다면 이렇게 (틀린) 답을 적었을 리는 없어서 유출됐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추후 현양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현양이 사회문화 과목 이의 신청 때 적어낸 내용을 듣고 “유출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교사 “처음엔 나도 의심…‘아닐 수도있겠다’ 싶기도 해”

김 교사는 교무 업무를 맡으며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아버지 현모씨의 재판에 제출된 성적 관련 사실조회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그는 2015, 2016, 2017년도 입학생 중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 및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이 크게 차이 나는 사례를 조사해 법원에 제출했다.

김 교사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학교에서 그런 성적 향상이 있을 수 없다고 저도 생각했고, 교사들도 상당수 그렇게 인식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실 조회 과정에서 ‘우리 생각과는 다른 성적 상승이 분명히 있기는 하구나’라고 알았고, 그런 면들 때문에 피고인(쌍둥이 딸)들을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어쩌면 사실이 아닌 거로 고초를(겪어)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있다”라고 말했다.

휴정 때 검-변 논쟁에 재판부 “예의 갖춰달라”

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A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다. [뉴스1]

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A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다. [뉴스1]

아버지는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쌍둥이 딸은 여전히 공판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도 검사와 변호인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증인 신문 방식을 두고 양측의 언성이 높아지자 재판장은 3분간 재판을 휴정했다. 하지만 휴정 중에 변호인이 증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다시 검사와 언쟁을 벌였다. 재판부는 “사건에 최선을 다하는 양측에 감사하다”면서도 “각자의 직분에서 예의를 갖춰달라”라고 당부했다. 딸들의 다음 공판은 7월 3일 열린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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