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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표방 안철수, 중도로 가는 통합당 불참할 이유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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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야권 통합 현실화될 수 있을까 

20대 총선 직후인 2016년 5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왼쪽),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 디지털포럼’에서 만났다. 그해 1월 민주당이 김 대표를 영입하자 안 대표는 ’광주 학살 후 국보위에 참여해 국회의원 한 분“이라고 맹비난했다. [연합뉴스]

20대 총선 직후인 2016년 5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왼쪽),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 디지털포럼’에서 만났다. 그해 1월 민주당이 김 대표를 영입하자 안 대표는 ’광주 학살 후 국보위에 참여해 국회의원 한 분“이라고 맹비난했다. [연합뉴스]

마라톤 10회에 해당하는 ‘400㎞ 국토대종주’로 총선을 치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선거가 끝났지만 지금도 계속 달리는 중이라고 한다. 마라톤 동호회 요청이 꽤 많다는 데, 안 대표는 현장 소통에 마라톤 정치를 활용 중이란 것이다. 지난달 30일 대구 방문 땐 구미 지역 청년들과 함께 뛰었다. 총선 마라톤으로 생긴 발톱 부상이 채 아물지 않았지만 다시 몸을 풀었다는 얘기다. 주변에선 ‘마라톤 자체가 정치 연설’이란 말이 있고 ‘국회의원 3명뿐인 국민의당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얘기도 함께 나온다. 의료봉사 과정에서 땀에 젖은 모습이 호평을 받았던 안 대표는 이후엔 지지율 반등 기미를 좀처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거대 양당 끼여 고민 깊은 국민의당 #겉으론 중심서 중도 대변 한다지만 #의원 3명 초미니당으론 현실적 한계 #‘내년 4월 재보선 전 통합’ 전망 많아

그런 그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에 대해 “곧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갑작스레 주목도를 높였다. 두 사람 만남이 야권 재편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12일 당 회의 후 기자들에게 “야권은 경쟁을 통해 거듭나고 국민 신뢰를 받아 저변을 넓혀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 변함에 없지만 지금 이 상태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당내 모임서 “국민의당 쪽에서 만나보자고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게 바로 전날이었다.

4·15 총선이 끝난 뒤 정치권 안팎에선 두 당의 연대와 야권 재편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례대표 3석의 국민의당이 자체적으론 대선 주자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게 그런 관측을 재생산시키는 큰 동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종인 비대위를 출범시켰지만 177석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하는 103석의 통합당도 리더십 부재까지 겹쳐 힘겨워했다. 양당 공조가 의석수의 두드러진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 대표가 통합당의 대선 링에서 뛰기 시작하면 야권 대선 지형에 시너지 효과가 생길 거란 기대감이 있다. 통합당은 중도층으로의 저변 확대, 안 대표는 대권 재도전 발판을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는 정치공학이다.

물론 김 위원장과 안 대표가 즉각적인 교류로 단일대오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두 사람의 관계가 썩 원만하지 않은 편이다. 안 대표는 당장은 좀 더 몸값을 올리는 쪽에 몰두해야 할 필요도 있다. 지금 상태론 그저 통합당의 일회용 불쏘시개나 ‘흥행 카드’로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합당 내 여러 얘기를 종합하면 절실함보다 ‘합치게 되면 나쁠 건 없다’는 정도의 목소리가 많다. 국민의당 역시 겉으론 “거대 양당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며 중도층을 대변하겠다”는 입장이다. 궁색한 처지서 탈출할 돌파구가 언젠가는 열릴 거란 기대가 담겼다.

그래도 두 당이 초거여(超巨與)에 맞서 조금씩 주파수를 맞춰가는 기류는 뚜렷하다.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이슈에 이어 여야의 원 구성 전쟁과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논란’ 등 현안에 대해 안 대표가 직접 목소리를 보탰다. 이를 놓고 한쪽에선 ‘뒷북 전문’이라고 욕하지만 안 대표는 “최근 김 위원장의 정책 담론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조를 맞췄다. 좌클릭하는 김종인 통합당에 보수로 다가서는 안철수의 국민의당이다.

이태규

이태규

양당 간 협력 방안과 연대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물밑 접촉이 이미 활발하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인가. 사무총장으로서 당의 존재감을 높여야 하고 대권 후보 안철수도 띄워야 하는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에게 물었다.

두 사람 회동을 위한 물밑 접촉이 있나.
“없다. 다만 당에선 만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두 당은 지금 국회 원 구성과 관련해 입장이 같다. 양당 원내대표는 여당 독식과 독주에 똑같이 반대하는 데 이젠 당 대표가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얘기다. 하지만 접촉은 없다.”
안 대표는 김 위원장과 만날 기회가 곧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정치인끼리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원론적 얘기다. 지금은 두 분이 모두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안 대표는 “지금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3석 야당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데.
“맞다. 의석 3석을 갖고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야당이 두 당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안에 따라 통합당과 연대 혹은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할 거다. 앞으로 당 대 당 협력이 절실한 매우 심각한 상황이 올 테고,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연대로 갈 개연성은 있다. 지금 그런 그림은 없다.”
안 대표는 내후년 대선에 출마하나.
“많은 지지자들이 출마를 원하고 안 대표는 부름에 호응하려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론 야권 전체가 대선이 쉽지 않다. 우린 실용이든 중도든 보수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국민 관심을 받아 유의미한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 본다. 야권이 그런 방향으로 재편돼야 하고, 그런 점에서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부가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고 생각한다.”
야권 재편은 언제쯤 올까.
“내년 4월 재보선엔 후보 연대가 될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지 뭔가 구체적 실체와 움직임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자면 정기국회 과정에서 부정기적이라도 야권 연대가 작동돼야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김웅

김웅

수면 아래서 양측을 이어보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통합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은 함께 ‘국민미래포럼’을 만들었다. 양당 의원 20여명이 참여하는 연구모임으로 두 당의 당명을 합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자주 만나고 친해지면 양당 통합의 가교 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통합 발판이란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란 얘기가 있다. 하지만 “과잉 해석”이란 반론도 있다. 연구모임을 주도한 통합당 김웅 의원에게 물었다.

국민미래포럼이 양당 통합을 위한 인큐베이터인가.
“아니다. 의원들 친소 관계로 아주 우연히 만들어졌다. 국회에 등록된 정식 의원 연구단체가 되려면 두 정당 이상 의원 간 모임이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양당이 결국 통합할 거라고 보나.
“안될 이유가 없다. 중도를 표방한 안철수 대표가 중도를 향해 변신 중인 통합당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또 누구든지 의원 3명의 정당으로 대선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쯤일까.
“내년 4월 재보선이 끝나면 통합당은 곧바로 대권·당권 후보 선출에 돌입한다. 레이스 준비가 필요하니 올 연말쯤 뭔가 움직임이 있지 않겠나.”

‘안철수 정치 멘토’로 불렸던 김종인, 갈라선 뒤 “뭘 잘 모른다” 낮은 평가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대표는 2011년 ‘안철수 태풍’의 진원이 된 청춘콘서트를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 위원장 외에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최상용 전 주일대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 원장, 법륜 스님 등이 청춘콘서트를 기획한 ‘평화재단’과 연결돼 있었다. 안 대표와 함께 수시로 6인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때 ‘안철수의 핵심 멘토’로도 불렸지만 김 위원장은 안 대표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를 둘러싸고 멀어졌다.

국민의당 창당을 앞둔 2015년 말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고민하던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을 찾아갔다. 김 위원장은 “당내 분란을 수습하는 역할을 해보라”고 조언했지만, 안 대표는 듣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 사이엔 험한 말이 오갔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당 창당 후 안 대표를 향해 “내가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많이 해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안다”며 “의사 하다가 백신 하나 개발한 사람이 경제를 잘 알겠느냐”고 평가절하했다.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을 향해 “낡은 생각과 낡은 리더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차르 패권’”이라고 비판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도대체 국회가 뭔지도 모르고 국회의원이 뭐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대선 후보였던 안 대표는 선거 막판 김 위원장을 찾아 ‘개혁 공동정부 준비위원장’직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선거를 열흘 앞두고 제안을 수락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선 차기 대선 주자를 말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20대 총선에서 제3세력으로 38석이나 얻었는데 그걸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