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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살해전 "여시같이 하지마라"···'문자 폭탄' 날린 그놈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중앙포토]

지난 5월 4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한 아파트에서 10여년간 고깃집을 운영해 온 60대 여성 A씨가 10년 단골인 남성 B씨(43)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언론에는 "고기를 구워주지 않는 등 서비스 부족해 범행했다"는 B씨의 진술이 보도돼 업주와 손님의 단순 갈등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B씨가 A씨에게 최근 두달여간 100통의 전화를 하고 수십통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드러났다.

경찰서 훈방된 다음날 범행

B씨는 지난 5월 3일 밤 늦게 A씨의 음식점을 찾아 행패를 부렸다. B씨는 평소에도 손님들에게 욕하고 싸우는 등 영업방해를 해왔으나 A씨는 그날따라 행위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4일 오전 12시 1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연행된 B씨는 진술서를 작성한 후 훈방됐다.

당시 A씨는 B씨가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점을 호소했으나 경찰 측은 증거가 없다며 단순 영업방해로 보고 B씨를 풀어줬다.

A씨는 B씨가 훈방된 후 늦은 시간까지 진술을 하다 오전 1시 30분쯤 경찰서를 나섰다. 당시 A씨는 경찰서에 동행했던 지인과 통화 중이었는데, 집 앞에 다다르자 놀라며 B씨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날이 밝자 A씨의 아래층에 사는 친누나의 집에서 A씨가 집을 나서길 기다렸다가 오전 9시 50분쯤 주차장에서 A씨의 복부와 폐, 심장 등을 흉기로 여러번 찔러 살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초 신고자는 동네 주민이었으며, 이후 B씨가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진신고해 경찰에 붙잡혔다.

"나 누나가 정말 좋다" 문자 수십통 보내

피의자 B씨는 A씨에게 지속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혀왔다. A씨 아들 제공

피의자 B씨는 A씨에게 지속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혀왔다. A씨 아들 제공

14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A씨 휴대폰 포렌식 캡처본에는 B씨가 A씨에게 보낸 문자 내용과 통화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B씨는 A씨에게 지난 2월 9일부터 4월 30일까지 약 100여통의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수신거절까지 해놨지만, 새벽부터 늦은 저녁시간까지 B씨의 전화는 계속됐다.

또 '여시같이 하지마라' '나 누나의 몸을 탐했을지 모르겠다' '누나가 정말 좋지만 앞으로 안가겠다' '내 전화 끓지마라 마음이 아프다' 등 문자메시지도 수십통이 발견됐다.

이 같은 내용은 A씨의 아들이 한 방송사와 휴대폰을 포렌식 업체에 맡기면서 드러났다. 사건 직후 휴대폰을 가져갔던 경찰 측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B씨는 이틀에 한번 꼴로 A씨의 식당을 찾아 폭언 등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주변 상인들은 물론 손님들도 A씨의 상황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A씨 아들은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 하면 돈을 던지면서 '나는 돈 줬으니까 또 올 거다'라든지, 고깃집인데 와서 소주만 시키고 앉아 있다든지 하는 행동을 했다"며 "B씨의 이런 행동은 올해 들어 특히 심해졌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 휴대폰에 남은 B씨가 통화 건 기록의 일부. B씨는 새벽부터 낮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A씨 아들 제공]

A씨 휴대폰에 남은 B씨가 통화 건 기록의 일부. B씨는 새벽부터 낮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A씨 아들 제공]

사과 한 마디 없는 가해자

평소 A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B씨의 형과 어머니에게 이 같은 피해 상황을 토로하며 조치를 요구해왔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또 사건 이후 B씨의 가족들은 "10년 동안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B씨의 행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아들은 "B씨와 B씨의 가족이 사과한 적도 없고 반성하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변호사를 선임해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만 노력 중인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년 동안 국회 문턱 못 넘은 '스토킹처벌법'

A씨 아들은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려 B씨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A씨 아들은 단순 살인이 아닌 스토킹 범죄에 이은 살인으로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오는 18일 이 사건 첫 공판이 예정돼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583건으로 201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매년 스토킹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경범죄로 분류돼 10만원 이하 벌금형에 불과한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

지난 1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률안에 따르면 스토킹범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 범죄로 피해자가 다치거나 생명이 위험한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며 피해자가 사망했을 때는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15대 국회부터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20년 넘게 계류됐던 만큼 이번에도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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