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적금 ‘붓다’ 보니, 재산이 ‘붇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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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지면서 각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0%대에 이르며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어디에다 어떻게 돈을 모아 불려야 할지 고민하는 투자자가 많아졌다.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 나갔는데 금리가 너무 내려 적금 대신 주식을 사 모을까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위 표현에 등장한 ‘부어’의 기본형은 ‘붓다’일까 ‘붇다’일까.

적금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꼬박꼬박 내는 돈에는 ‘붓다’를 써야 한다. “매달 대출 이자를 붓다 보면 한 달 생활비가 항상 빠듯하다” “5년간 매달 붓던 곗돈을 드디어 타게 됐다” 등처럼 이자나 곗돈 등도 일정액을 일정 기간 내는 돈이므로 ‘붓다’를 사용한다.

‘붇다’는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진다는 의미로, “재산 붇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른다” “쌀 한 톨도 아껴 써야 살림이 붇는 법이다”와 같이 쓴다.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만 있었더니 체중이 삽시간에 불었다”에서 ‘불었다’는 ‘불다’의 과거형처럼 보이지만 분량과 수효가 늘었다는 의미로, ‘붇다’가 활용된 형태다.

‘불다’는 늘었다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다” “유행이 불다” “휘파람을 불다” 등처럼 바람이나 유행, 풍조 등의 움직임과 변화를 나타낼 때 쓰인다.

“불은 라면은 맛이 없다”에서의 ‘불은’도 기본형이 ‘불다’나 ‘붓다’로 생각하기 쉽지만, 라면의 부피가 늘어났다는 걸 의미하므로 ‘붇다’가 기본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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