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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집 지으려고 산 땅이 '비오톱'으로 지정, 어찌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유정의 알면 보이는 건설분쟁(8)

비오톱은 그리스어의 Bios(생명)와 Topos(공간)의 합성어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조례에서는 이를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라 정의한다. [사진 Pixabay]

비오톱은 그리스어의 Bios(생명)와 Topos(공간)의 합성어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조례에서는 이를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라 정의한다. [사진 Pixabay]

한수니씨는 약 10년 전, 은퇴 후 주택을 지을 생각으로 서울 성북구에 주택지조성사업지역으로 지정된 대지를 구입했다. 몇 해 전 한씨는 단독주택을 신축하기 위해 건축허가를 신청할 계획이었으나, 구청에서 토지가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되어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소유자에게 통보도 없이 지정된 비오톱 때문에 은퇴 계획이 망가졌다는 생각에 화가 난 한씨는 소송하기로 한다.

비오톱은 그리스어의 Bios(생명)와 Topos(공간)의 합성어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조례에서는 이를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라 정의한다.

최근 들어 비오톱 등급이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이에 관한 법적, 제도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오톱 1등급을 가리켜 제2의 개발제한구역이라고 하는가 하면, 비오톱 1등급 토지는 무조건 투자하면 안된다고 하며 이를 ‘함정 내지 사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오톱 등급은 비오톱유형에 대한 평가와 개별비오톱에 대한 평가로 구분된다. 비오톱유형평가는 5개의 등급으로 구분해 서식지기능, 생물서식의 잠재성, 식물의 층위구조, 면적 및 희귀도를 종합해 평가한다. 개별비오톱평가는 자연형 비오톱유형과 근자연형 비오톱유형을 대상으로 평가해 3개의 등급으로 구분하며 자연성, 생물서식지기능, 면적, 위치 등을 평가항목으로 고려한다. (이하 비오톱 유형평가가 1등급이고 개별비오톱평가 1등급인 토지를 ‘비오톱 1등급’이라 한다)

지목이 ‘대지’인 한씨의 토지에 자라던 몇 그루의 나무마저 2년 전 태풍으로 고사했고, 이후 위 토지는 잡초만 무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의신청을 통하여 비오톱 등급 재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지목이 ‘대지’인 한씨의 토지에 자라던 몇 그루의 나무마저 2년 전 태풍으로 고사했고, 이후 위 토지는 잡초만 무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의신청을 통하여 비오톱 등급 재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아무런 보상 없이 도시계획시설 결정으로 토지 소유자들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구 도시계획법 제4조가 헌법불합치로 판단된 후, 새로 제정된 국토계획법에서는 고시일을 기준으로 20년이 지날 때까지 사업이 시행되지 않으면 도시계획시설결정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으로 정했다. 올해 7월에는 상당한 토지에 대한 도시계획시설결정의 효력이 상실될 예정이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위 결정 이후 2001년 서울시는 최초로 생태현황지도를 작성해 이를 학술자료 내지 참고자료로 이용했다. 2009년 11월 11일 개정된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제24조에서 ‘비오톱 유형평가가 1등급이고 개별비오톱평가 1등급인 토지는 대상지 전체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보전하여야 한다’는 사유를 신설해 이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2015년 7월 30일 개정된 조례에서는 ‘1등급으로 지정된 부분은 보전’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도시생태현황지도를 제작, 활용하고 있다. 2017년 11월 28일 신설된 자연환경보전법 제34조의 2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매 5년마다 도시생태현황도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도시생태현황도의 제작을 독려하고 있는 중인데, 2021년까지 84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작성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씨는 자신의 토지가 어떠한 사유로 비오톱 1등급인 토지인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목이 ‘대지’인 한씨의 토지에 자라던 몇 그루의 나무마저 2년 전 태풍으로 고사했고, 이후 위 토지는 잡초만 무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오톱 1등급에 대한 대응, 이의신청과 재조사결정
서울시 도시생태현황도 운영지침은 토지 소유자의 이의신청으로 비오톱 등급을 재결정할 수 있는 비오톱 등급의 수정, 보완의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토지소유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조사 대상 토지에 관한 사진, 법령 위반 사항 등을 자치구에서 조사하고,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 경우 전문기관이 현황조사를 한다.

비오톱 등급 산정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비오톱 등급 산정의 근거자료, 예를 들어 식피율 산정이 잘못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태풍, 가뭄 등 외적 요인으로 식생이 변경되어 비오톱 등급이 재조정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비오톱 1등급이 지정되었다는 사유로 건축허가가 반려되어 그 반려처분의 취소를 구한 사건에서 2등급으로 조정받아 반려처분의 위법성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비오톱 지정고시가 토지소유자들에게 개별 고지되지 아니하고, 해당 토지가 토지이용계획상 도시지역, 제1종 전용주거지역 등에 위치하고 있어 토지소유자로서는 비오톱과 같은 생태적인 사유로 개발행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사정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설시한 바 있다.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서는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게 그 적법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 그리고 행정처분의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사진 Pxhere]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서는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게 그 적법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 그리고 행정처분의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사진 Pxhere]

비오톱 고시에 대한 소송
이의신청 절차에서 전문기관이 현황조사를 하고, 비오톱 등급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평가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가 수행한 소송에서는 재조사과정에서 식피율 산정과 관련하여 비오톱 등급의 산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산정방법으로 평가된 식피율이 비오톱 재결정 평가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재조사결과 그 현황이 비오톱 1등급이 아닌 경우에도, ‘사고지’라고 판단되어 비오톱 평가 등급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운영지침에서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조례 제68조의2 제2호의 사고지(고의 또는 불법으로 임목이 훼손되었거나 지형이 변경되어 원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토지)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고 10년간 변경 전 비오톱 평가 등급을 유지한다’고 정하고 있다. 위 지침 내지 조례의 위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행정청이 재조사절차에서 ‘사고지’인지 여부를 정확하고 엄밀하게 파악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법률을 위반하여 임목을 훼손한 것이라면 과연 어떠한 실정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인지, 훼손된 입목이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된 구역 내에 존재하는 임목이 맞는지, 임목이 훼손되었다면 임목 훼손의 주체는 누구인지가 명확하게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서는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게 그 적법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 그리고 행정처분의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비오톱 1등급의 지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칙이 엄격하게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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