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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사건 '증언조작 의혹' 수사 전환될까…당시 수사팀 "기록 보면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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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가 2015년 8월 24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 전 총리가 2015년 8월 24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76)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허위 증언을 종용했다는 진정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진정은 조사와 수사의 전 단계로, 검찰이 진정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수사로 전환한다. 당시 사건과 관련된 검찰 관계자들은 "수사·재판 기록을 보면 진정 사건(증언조작 의혹)이 수사까지 이어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수사 전환 가능성을 따져봤다.

한만호 동료 수감자, 9년 만에 "검찰 위증 교사 있었다" 

중앙지검은 1일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법정 증인으로 섰던 A씨가 법무부에 제출한 진정 사건을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했다. A씨는 지난 4월 법무부에 '당시 검찰의 위증 교사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정을 냈다. 진정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대검찰청을 거쳐 중앙지검으로 이첩됐다.

A씨는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이를 번복한 한신건영 전 대표 고(故) 한만호씨의 동료 수감자다. A씨는 2011년 한 전 총리 재판에서 "한씨가 구치소에서 '검찰 진술이 맞지만 법정에서 뒤엎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했다. A씨는 최근 9년 만에 입장을 바꿔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검찰의 위증 교사를 받아 거짓으로 한 전 총리와 한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면서다.

"검찰에 불만 품은 진정, 신빙성 없으면 대체로 공람종결"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 검찰의 위증 종용이 있었다는 진정을 받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사진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 검찰의 위증 종용이 있었다는 진정을 받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사진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사건을 배당받은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은 당시 수사·재판 기록을 살펴보면서 진정에 신빙성이 있는 지를 먼저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A씨를 불러 진술 번복의 이유 등을 물어볼 수도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진정을 내는 경우는 잦다. 이 때문에 진정 내용에 신빙성이 없다면 수사로 전환되지 않고 공람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례적이긴 하지만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을 불러 좀 더 면밀한 진상 조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은 일반적인 진정 사건과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데다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큰 탓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스1]

"A씨가 먼저 얘기…사건 기록만 봐도 문제없어"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 전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당시 수사팀 이야기를 종합하면 A씨가 먼저 한씨가 진술을 번복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 수사팀은 실제로 한씨가 진술을 번복해 얘기를 들어보려고 불렀다고 한다. 한씨는 또 당시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때 메모를 자꾸 보고 읽었는데, 확인 결과 진술 번복을 연습한 흔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공판 기록만 봐도 수사팀의 조사 문제는 전혀 없었다"며 "당시 재판부가 채권 기록 등 증거를 통해 판단한 것이지, 한 씨의 진술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선까지 조사할까

중앙지검이 당시 검찰 관계자들 중 어느 선까지 조사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진정 사건은 현직 검사들만 대상으로 하는 감찰이 아니기 때문에 전·현직 모두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 A씨는 피진정인을 특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당시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섰던 한씨의 또 다른 동료 수감자인 B씨 역시 검찰의 증언 조작을 경험했다며 당시 수사팀과 지휘라인 전원 18명을 고발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재심 청구 우회로? 윤석열 측근 쳐내기?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 1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 1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이 조사를 압박하는 데에는 한 전 총리의 재심 청구를 위한 우회로를 마련해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씨의 비망록 등은 이미 재판부가 따져본 증거라 새로운 증거가 아니다. 무죄를 인정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라 한 전 총리가 재심 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수사에 관여한 검사 등이 직무에 관한 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진정 사건이 조사에서 수사로 전환,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되면 한 전 총리의 재심 청구가 가능해진다. 이럴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재심을 이끌 가능성도 있다.

당시 수사팀 상당수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뢰하는 인물들이라 추 장관이 7월 검찰 인사를 앞두고 이들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광우·박사라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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