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상 첫 온라인 ‘삼성고시’…“집중 안돼 불편”vs“기회에 감사”

중앙일보

입력

삼성그룹이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상반기 채용 GSAT를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시험으로 진행했다. 사진은 31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감독관들이 실시간으로 원격 감독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삼성그룹이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상반기 채용 GSAT를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시험으로 진행했다. 사진은 31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감독관들이 실시간으로 원격 감독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

삼성그룹이 상반기 공개채용에서 ‘삼성 고시’라고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온라인으로 시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서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 건 삼성이 지난 1995년 직무적성검사를 도입한 후 처음이다. 이번 시험은 30일과 31일 양일 오전 9시, 오후 2시로 나눠 총 4회 시행됐다.

삼성그룹은 5월 중순 서류전형에 합격한 지원자들에게 ‘직무적성검사 응시자용 키트’를 보냈다. 이 키트엔 휴대폰용 거치대, 문제풀이용 종이, 주의사항 안내문 등이 들어있었다. 부정행위를 막고자 거치대 위에 스마트폰을 올린 뒤 자신의 얼굴·손·컴퓨터 모니터를 한 화면에 들어오도록 촬영을 하면서 시험에 응시하도록 했다. 시험은 감독관 1명이 지원자 9명을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취업준비생들은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전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온라인 시험 방식을 두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삼성그룹이 응시자들에게 전달한 직무적성검사 키트. 사진에 보이는 하얀 휴대폰 거치대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시험을 보도록 했다. [독자제공]

삼성그룹이 응시자들에게 전달한 직무적성검사 키트. 사진에 보이는 하얀 휴대폰 거치대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시험을 보도록 했다. [독자제공]

“아직은 종이가 익숙해”

온라인 GSAT에 응시한 한 취업준비생은 "평소 밑줄을 그으면서 문제를 푸는 습관이 있어서 온라인 시험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독자제공]

온라인 GSAT에 응시한 한 취업준비생은 "평소 밑줄을 그으면서 문제를 푸는 습관이 있어서 온라인 시험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독자제공]

취업준비생들은 온라인 시험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지원한 A씨는 “평소 수리·추리영역 문제를 풀 때 문제지에 밑줄을 긋고 중요한 부분을 연필로 동그라미 치곤 했다”며 “온라인 시험이다 보니 직접 밑줄을 그을 수 없어 문제를 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모니터 화면에도 손을 대면 부정행위 처리를 한다는 공지사항이 있었다”며 “종이가 더 익숙해 컴퓨터 화면에 뜬 문제가 눈에 잘 안 들어와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했다.

삼성전자에 지원한 B씨는 “길이가 긴 문제의 경우 한 화면 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며 “모니터 화면이 클수록 문제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는 후기 글도 올라왔다”고 전했다.

앞서 인크루트·해커스 등 일부 채용서비스 업체들은 삼성이 온라인 GSAT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후 이에 발맞춰 온라인 모의고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취업서비스업체들은 온라인 GSAT 모의고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크루트, 위포트 홈페이지 캡쳐]

취업서비스업체들은 온라인 GSAT 모의고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크루트, 위포트 홈페이지 캡쳐]

“각자 응시 환경 달라 불공평”vs“집에서 보니 편해”

삼성그룹이 응시자들에게 메일로 전달한 온라인 GSAT 주의사항. [독자제공]

삼성그룹이 응시자들에게 메일로 전달한 온라인 GSAT 주의사항. [독자제공]

시험에 응시하는 환경이 지원자마다 달라 불공평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삼성그룹은 응시장소에 대한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한 취업 준비생은 “집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혼자 방에 들어가 시험을 봤지만 거실에서 소음이 발생할까봐 걱정됐다”며 “공식 시험장처럼 모두 환경이 같은 게 아니니까 불공평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취업준비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엔 “GSAT 시험을 위해 스터디룸을 대여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올해 GSAT를 세 번째로 본다는 C씨는 “자취방에서 시험을 봤는데 오히려 시험장까지 가는 이동시간도 아끼고, 편안한 환경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다”며 “각자 기호에 맞게 장소를 선택하면 되니까 응시자 입장에선 더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취업 기회 주는 게 어디야”

여러 고충에도 취업준비생들은 “시험 응시 기회를 주는 게 어디냐”고 입을 모았다. 2년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한 취업준비생은 “코로나19로 아예 채용을 안 하는 기업들도 많아 채용 공고 자체가 줄었는데 시험 기회라도 주니까 고맙고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작년에 비해 주변에 서류전형에 합격한 친구들이 많이 없다. 삼성도 채용규모를 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채용’ 확산될까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에 응시한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에 응시한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삼성그룹 관계자는 “처음으로 시행한 온라인 시험은 큰 문제 없이 끝났다”며 “상반기 시험 결과와 지원자들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하반기에도 온라인 시험을 실시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식품기업 오뚜기도 상반기 채용시험을 온라인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상반기 채용 과정에 화상면접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일부 회사에선 취업 지원자 방에 360도 카메라를 설치한 후 집에서 채용시험을 보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 채용이 언뜻 보기에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쓰는 인력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 채용은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에 그칠 확률이 높다”고 평가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