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머리카락 비비며 "느낌오냐"...이랬던 상사 1.2심 무죄,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pixabay]

[pixabay]

직원 10명 남짓한 소규모 회사에 갓 입사한 20대 여성 A씨. 옆자리엔 30대 중반의 B(40) 과장이 앉는다. 같은 팀 상사인 B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A씨에게 컴퓨터로 음란한 영상을 보여줬다. 손으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제스처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B는 회사 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성적 농담이나 희롱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A씨는 B에게 거부감을 표현하고, 더 높은 상사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B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다가오더니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며 A씨의 머리카락 끝부분을 잡고 비볐다. 또 손가락 끝으로 A씨 어깨를 톡톡 두드려 놀라서 돌아보면 혀로 입술을 핥는 걸 보여줬다. 또는 “앙, 앙”이라고 소리를 냈다.

스트레스에 잠도 못 자고우울증약까지 먹게 된 A씨는 일도 그만두고 참다 참다 B씨를 고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하게 된다. 그런데 A씨의 기대와는 달리 1ㆍ2심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성추행에 항의하니 업무상 위력이 없다?

[pixabay]

[pixabay]

하급심은 ‘업무상 위력’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B씨와 A씨가 서로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관계에 있긴 하지만 B씨의 위력이 A씨를 제압한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다.

그 근거로 법원은 B씨가 경력 입사로 A씨보다 단 2개월 먼저 입사했을 뿐이고 인사권 등으로 A씨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

A씨가 B씨에게 거부감을 표현한 것도 ‘위력’이 없다는 근거가 됐다. A씨는 B씨에게 직접 싫다고 말하거나 자신도 성적 농담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다른 상사에게 B씨의 성희롱을 알렸다. A씨의 이런 대응을 보면 A씨가 B씨와의 관계에서 심리적 두려움이나 위축감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한 것이다.

항의하자 일까지 떠넘긴 상사  

[pixabay]

[pixabay]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의 이런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B씨 행동이 업무상 위력을 행사한 추행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B씨의 계속된 성희롱적인 행동을 평소 수치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B씨가 A씨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어깨를 톡톡 치며 혀를 핥는 행동 등을 한 건 20대 미혼 여성인 A씨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B씨가 A씨의 항의에 ‘업무 떠넘기기’로 대응한 점도 꼬집었다. B씨는 자신의 성희롱에 A가 반발하자 자기 일을 A씨에게 떠넘기고 퇴근해버렸다. 어떤 때는 퇴근 시간 직전에 A씨에게 일을 시켜 야근하게 했다. 자신이 가르쳐야 할 A씨에게 회사 일과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 A씨가 일 처리를 하는 데 애를 먹게도 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서울서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