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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전쟁 다가오는데 총알 하나뿐"…요즘 김부겸 처지가 이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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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 때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 1순위 후보였다. 2018년 6월 18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발표한 차기 당권 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당시 김 장관은 16.7%를 기록해 박영선 의원(10.3%)과 이해찬 의원(9.3%)을 따돌리고 앞서나갔다. 대구·경북(TK) 출신으로 친문(친문재인) 주류와 다소 거리가 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 초대 조각 때 부름을 받았던 김 전 장관은 적폐청산에 몰입하던 여권에 '통합’과 '탕평'의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는 카드로 주목받았다.

당내 여건도 김 전 장관에겐 천재일우로 보였다. 친문 독식을 우려하는 비주류 의원 상당수가 김 전 장관을 돕겠다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그 해 8월 25일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의원도 김 전 장관이 나선다면 당권 도전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었다는 얘기가 나중에 전해졌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 4월5일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을 찾아 소방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재임 기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12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1월), 종로 고시원 화재(2018년 11월) 등 대형 화재 사고가 잇따랐다. 고성 산불을 끝으로 임기를 마친 그는 국회로 돌아와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 4월5일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을 찾아 소방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재임 기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12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1월), 종로 고시원 화재(2018년 11월) 등 대형 화재 사고가 잇따랐다. 고성 산불을 끝으로 임기를 마친 그는 국회로 돌아와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도전은 선언도 하기 전에 끝났다. 그 해 6월 26일자 본지 인터뷰에서 “당 대표 출마가 저의 정치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런데 지금 저를 지휘하는 사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다. 그 분들에게서 ‘당에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없는데 제가 마음대로 사표를 던지면 어떡하나”라고 말한 게 치명적 부메랑이 됐다. 당권 도전 여부가 ‘문심(文心, 문 대통령 의중)’에 달린 문제라고 읽히는 표현 때문에 기대감은 주저앉았고 결국 문 대통령도 오히려 개각 명단에 김 전 장관을 올리기 어렵게 됐다.

"정면돌파 나서야" vs "외곽서 힘 비축해야"

민주당 차기 당권 구도에서 김 전 장관의 도전 여부는 마지막 변수로 평가되고 있다. 총선 전부터 대권 도전 없이 2년 임기를 꽉 채우는 당 대표를 염두에 뒀던 송영길ㆍ우원식ㆍ홍영표 의원의 출마 계획은 이낙연 전 총리의 ‘당권 출마 기정사실화’로 다소 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다.

김 전 장관의 당권 도전론은 21대 총선 부산진갑 선거에서 낙선한 김영춘 전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남권을 대표해 김부겸 의원이 당 대표로 나서주길 공개 제안한다”고 밝히면서 공론화됐지만 김 전 장관은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총선 후 몇몇 인터뷰에서도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김 전 장관 주변에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나서야 한다”는 주장과 “대권 도전을 위해 외곽에서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악화된 여건과 한 발뿐인 총알

지난 4월 19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왼쪽)과 김부겸 의원이 국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2003년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 수도권 지역구를 버리고 험지인 부산과 대구로 돌아가 20대 총선에서 동시에 화려하게 컴백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나란히 낙선했다. 변선구 기자

지난 4월 19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왼쪽)과 김부겸 의원이 국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2003년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 수도권 지역구를 버리고 험지인 부산과 대구로 돌아가 20대 총선에서 동시에 화려하게 컴백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나란히 낙선했다. 변선구 기자

김 전 장관의 상황에 대해 86그룹에 속하는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당권에 도전했다가 완패하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동력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큰 전쟁이 다가오는데 총알이 한 발뿐인 처지”라며 “잘못 쏘면 정치적 재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여건도 결심만 하면 당권을 잡을 수 있을 듯했던 2018년에 비해 열악해졌다. 2018년 김 전 장관은 민주당의 사지(死地) 대구에서 2번의 낙선(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끝에 2016년 총선에서 생환, 기세가 오른 상태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돼 ‘문심’에도 바짝 다가섰다. 그러나 다시 낙선거사가 된 지금 민주당의 분위기는 총선 대승으로 지지율 60%대를 기록 중인 문 대통령의 그림자와 ‘이낙연 대망론’이 압도하고 있다. 이 전 총리에게 기운 호남의 동의를 구하기도, 비주류 의원들의 전폭적 지원을 얻기도, 이해찬 대표가 한때 마음먹었던 것과 같은 친문 진영의 양보나 후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이미 총선 선거운동 돌입과 동시에 대권 도전 의사를 공식화한 상태여서 전당대회에 나설 경우 대선 도전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도 애매해진다. “이 전 총리처럼 당권 도전을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으로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민주당 한 당직자)는 의견도 있지만 “40%대 지지율을 보이는 이 전 총리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을 당원들이 인정하기 어려울 것”(충청권 재선 의원)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박한 선택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당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당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장관은 최근 10여일째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잠행하고 있다. 공식 행보로는 5·18 40주년 기념식을 전후해 광주ㆍ전남에 2박 3일간 체류했고, 지난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게 알려진 정도다.

측근들에게선 “5월 안에 마음을 정한다고 했다” “곧 입장을 발표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의 선택 방향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김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참모진 내부에서도 명분을 제대로 세우면 석패해도 실보다 득이 많다는 주장도 있고 자칫 ‘김부겸 대통령’을 바라던 지지자들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분분하다”며 “무슨 답을 낼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김 전 장관은 자신이 페이스북에 “이번 총선에서 실패하고 물러서게 되지만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의 정치’를 향한 저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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