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반' 흑인 쫓아가 총겨눈 경찰···90세 할머니는 쓰러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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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했다. 왼쪽은 경찰이 뒤늦게 공개한 바디캠 영상, 오른쪽은 SNS를 통해 퍼진 영상의 한 장면이다. [미들랜드시 유튜브, SNS]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했다. 왼쪽은 경찰이 뒤늦게 공개한 바디캠 영상, 오른쪽은 SNS를 통해 퍼진 영상의 한 장면이다. [미들랜드시 유튜브, SNS]

한 흑인 청년이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다. 빈손을 흔들며 비무장 상태임을 알리지만 경찰 네명은 총을 거두지 않은 채 "가까이 오라"고 반복한다. "너무 무섭다"며 엎드려 공포를 호소하는 이 청년의 곁에 할머니가 섰다. 경찰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위험을 무릅 쓴 것이다. 경찰은 흑인 청년을 제압해 경찰차에 태웠고 할머니는 쓰러졌다. 혐의는 정지신호 위반이다.

29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상황이 벌어진 건 지난 16일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에서다. 타이 앤더스(21)라는 이 청년의 체포 장면을 담은 영상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엎드려 비는 앤더스 곁에 90세 할머니가 서서 변호하다 쓰러지는 모습이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사건과 맞물리며 논란을 키운 것이다. 미들랜드 경찰도 뒤늦게 바디캠 영상을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애초 체포의 근거가 된 신호 위반 사실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만 부각됐다.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할 당시 모습. [미들랜드시 유튜브]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할 당시 모습. [미들랜드시 유튜브]

경찰의 바디캠 영상에는 도로 멀찍이서 천천히 운행 중인 앤더스의 차량이 한적한 교차로를 건너는 모습이 나온다. 도로 오른쪽에 '잠깐 멈춤' 표지판이 있다. 멀리서 봤을 때 앤더스의 차량이 멈춘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해 그가 신호를 위반하고 바로 교차로를 건넜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한 근거가 된 잠시 멈춤 위반 상황. [미들랜드시 유튜브]

미국 텍사스주(州) 미들랜드 경찰이 지난 16일 타이 앤더스를 체포한 근거가 된 잠시 멈춤 위반 상황. [미들랜드시 유튜브]

앤더스를 쫓아간 경찰은 그가 할머니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자 총을 겨눴다. 주변에서는 "네 명이나 총을 겨누고 있다,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라며 경찰을 향한 야유도 나왔다. 경찰은 결국 그를 제압해 차량에 태웠다. 경찰의 바디캠 영상에도 앤더스가 빌고 할머니가 애원하다 쓰러지는 모습은 동일하게 담겨 있었다. WP는 미들랜드경찰청이 과잉진압에 연루된 경찰들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은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흑인 사망사건으로 들썩이고 있다. 백인 경찰이 "숨을 쉴 수 없다 "며 호소하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다 숨지게 한 모습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다. 이후 미니애폴리스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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