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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소비·투자 트리플 충격에…한은, 22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 공식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은행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2%로 대폭 낮춰잡았다. 기존 전망치(2.1%)보다 2.3%포인트나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경제 전반이 미치는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판단에서다. 한은이 마이너스 성장률 전망을 한 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1.6%) 이후 11년 만이다.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28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기업 빌딩들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28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기업 빌딩들 모습. 연합뉴스

한은은 28일 5월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2%로 수정했다. 내년은 기존 2.4%에서 3.1%로 높여 잡았다. 올해 충격에 따른 기저효과를 반영한 것이다. 일단 올해는 암울한 성적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을 했던 건 GDP 통계를 시작한 1953년 이후 1980년(-1.6%), 1998년(-5.1%) 단 두 차례 밖에 없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던 2009년에도 실제 성장률은 0.8%였다.

미·중 무역분쟁 완화와 반도체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지난해보다 성장률이 나아질 것이란 당초 예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코로나19 이슈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국내 경기는 상반기 중 크게 위축됐다가 하반기부터 소비와 수출 회복으로 완만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첫 시나리오별 전망…최악 땐 -1.8% 

한은의 이번 전망은 GDP를 구성하는 수출·소비·투자 동반 부진에 기초한 것이다. 3월까지 그나마 버텼던 수출은 4월부터 낙폭이 확 커졌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4월 24.3%, 5월(20일까지) 20.3% 각각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국제 교역이 얼어붙은 여파다. 반도체가 그나마 선방해주고 있지만, 자동차와 석유제품 같은 또 다른 주력 품목은 수출이 전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내다 팔 길이 막막하니 기업의 살림살이가 쪼들리는 건 당연하다. 5월 제조업 업황 BSI(기업경기실사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해 49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미쳤던 2009년 2월(4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매출과 가동률, 자금 사정 모두 비관적인 응답이 많이 늘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의 영향으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던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완전한 회복으로 보긴 이르다. 국내외 소비가 살아나려면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란 명확한 신호가 필요하다. 당장은 어렵다.

그래픽=김은교

그래픽=김은교

얼어붙은 고용시장도 시간이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7만6000명 줄었다. 외환위기 여파가 미친 1999년 2월(-65만8000명)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이 부총재보는 “서비스업은 하반기에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내겠지만, 제조업은 업황 부진으로 취업자 수 감소 폭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전망(-0.2%)은 코로나19 신규·잔존 확진자 수가 2분기 중 정점을 찍고, 봉쇄 조치가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걸 전제로 했다. 이날 한은은 사상 처음으로 시나리오별 성장률 전망치를 공개했다. 기본 시나리오보다 빠르게 코로나19사태가 진정될 경우엔 0.5% 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확진자 수 정점이 3분기로 밀리고, 봉쇄조치 완화도 늦어지면 -1.8%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코로나19 아직인데…미중 갈등 새 악재로 부상 

당장 2분기는 1분기(-1.4%)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크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2003년 1~2분기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이 부총재보는 “2분기는 마이너스, 3분기는 0 내외, 4분기는 여기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이외의 변수가 부상했다. 미·중 관계 악화다. 미국은 코로나19 책임론을 시작으로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반대, 화웨이 제재 등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도 외환시장 개입 수위를 높이는 등 맞불을 놓을 기세다. 어느 쪽과도 틀어지기 부담스러운 게 한국의 처지다. 악재 하나가 걷히기도 전에 또 다른 먹구름이 밀려오는 형국이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경제전망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최창호 물가동향팀장, 이지호 조사총괄팀장, 이환석 부총재보, 공철 동향분석팀장. 한국은행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경제전망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최창호 물가동향팀장, 이지호 조사총괄팀장, 이환석 부총재보, 공철 동향분석팀장. 한국은행

양국 간 무역 갈등, 환율 갈등이 심해지면 중간재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어떤 형태로도 득을 보기 어려운 구조다. 미·중 무역 전쟁이 심각하게 전개됐던 지난해 반도체 수출이 전년 대비 25.9% 급감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이미 경험했듯 미·중 갈등은 한국 입장에서 수출 회복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라며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성장 전망에도 현재로썬 코로나19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는 것 외엔 마땅한 반전 카드가 없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시장은 V자 반등을 기대하지만, 확진자 수가 재차 늘어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그럴 경우 실물 경제가 받는 2차 충격이 금융시장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정용환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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