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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방화벽' 처벌에…환구시보 편집인조차 中 경찰에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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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편집인 후시진(胡錫進)이 지난 19일 인터넷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했다는 중국 공안(公安, 경찰)의 발표에 대해 “나는 이런 처벌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산시성 공안, VPN 사용자 처벌 발표 #환구시보 편집인 공개적으로 반대 천명 #“사람들의 VPN 사용을 합리적으로 봐야” #중국 인터넷 사용자 6명 중 1명 사용 #5G 기술 선도 중국의 아이러니한 현실

중국은 21일부터 약 일주일 간의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에 돌입한다. 이 기간 보안이 강화되며 인터넷 또한 접속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인민대회당의 보안 요원들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21일부터 약 일주일 간의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에 돌입한다. 이 기간 보안이 강화되며 인터넷 또한 접속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인민대회당의 보안 요원들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애국적' 언론인이 당국의 조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까닭이다. 후시진이 반대한 건 산시(陝西)성 안캉(安康)시 공안국 산하의 한빈(漢濱)지서가 취한 조치다. 한빈지서는 19일 오전 인터넷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적발해 처벌했다고 발표했다.

양(楊)씨라는 사람이 지난해 9월 자신의 휴대폰에 가상사설망(VPN)을 깔고 제멋대로 해외 사이트와 접속했다는 게 혐의다. 중국의 인터넷 관리 규정에 따라 양씨에게 행정 경고를 하고 500위안(약 8만5000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을 내렸다고 했다.

중국 산시성 안캉시 공안국 산하 한빈지서는 지난 17일 허가 없이 VPN을 사용한 혐의로 양모씨(왼쪽)를 붙잡았다고 19일 오전 발표했다. 이 발표는 중국 언론인 후시진으로부터 공개적인 반대에 부닥치며 중국 내 VPN 사용 여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산시성 안캉시 공안국 산하 한빈지서는 지난 17일 허가 없이 VPN을 사용한 혐의로 양모씨(왼쪽)를 붙잡았다고 19일 오전 발표했다. 이 발표는 중국 언론인 후시진으로부터 공개적인 반대에 부닥치며 중국 내 VPN 사용 여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이 소식을 접한 후시진은 19일 밤 환구시보에 “VPN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걸 ‘위법’으로 처벌하는 데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중국의 인터넷 검열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VPN을 사용하는 걸 합리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부분은 모호한 영역으로 불법이라는 모자를 마구 씌워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사회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탄성과 활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 중국인의 VPN 사용을 모호한 영역으로 남겨둬야 하며 무조건 불법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 환구시보 총편집 후시진은 지난 19일 밤 중국 경찰이 VPN을 사용한 중국 시민을 처벌했다는 발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눈길을 끌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환구시보 총편집 후시진은 지난 19일 밤 중국 경찰이 VPN을 사용한 중국 시민을 처벌했다는 발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눈길을 끌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 같은 후시진의 주장은 현재 중국 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중국 인터넷 안전법’을 만든 뒤 당국의 허가 없이 VPN을 사용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만리장성(Great Wall)과 컴퓨터 방화벽(fire wall)을 합쳐 만든 용어인 ‘만리 방화벽’이라는 인터넷 감시 및 검열 시스템을 운영 중인 중국은 최근엔 인공지능(AI)까지 이용해 중국인의 인터넷 사용을 감독하고 있다. 일반 중국인의 VPN 사용은 불법이다.

중국에서 VPN은 불법적인 일로 만리 방화벽을 넘어야 한다는 뜻에서 ‘담장을 넘다’는 의미의 ‘판창(翻墻)’이라고 불린다. 2018년 말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8억 2900만 명인데 이중 불법으로 VPN을 사용하는 사람은 무려 1억 4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중국의 인터넷 첨단 기술은 일반을 위한 게 아니라 소수 권력자의 대중 통제를 위해 이바지하는 도구로 쓰이며 ‘디지털 레닌주의’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중국의 인터넷 첨단 기술은 일반을 위한 게 아니라 소수 권력자의 대중 통제를 위해 이바지하는 도구로 쓰이며 ‘디지털 레닌주의’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법대로 처벌할 경우 인터넷 사용자 6명 중 한 명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마음대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담장을 넘는’ 중국인 중 상당수가 중국 당국의 입장을 옹호하며 해외 여론과 전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중국의 많은 네티즌이 ‘담장을 넘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네티즌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또 최근엔 중국 외교관이 공공연하게 중국에선 접속이 안 되는 트위터를 이용해 미국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허우옌치 네팔주재 중국대사는 트위터를 이용한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31일 날린 트윗으로 2020년 네팔 관광의 해 성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첨부한 사진 네 장이 파격적인 모습으로 여겨지며 큰 화제가 됐다. [중국 인민망 캡처]

허우옌치 네팔주재 중국대사는 트위터를 이용한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31일 날린 트윗으로 2020년 네팔 관광의 해 성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첨부한 사진 네 장이 파격적인 모습으로 여겨지며 큰 화제가 됐다. [중국 인민망 캡처]

누구는 VPN 사용이 가능하고, 누구는 안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중국 민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당국은 매년 6월 4일의 천안문(天安門) 사태에 즈음하거나 정치적 민감한 계절이 다가오면 중국 네티즌의 VPN 사용을 단속하곤 한다. 중국에 불리한 소식이 해외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과 무역 전쟁을 한창 벌일 때도 중국 경제를 우려하는 국내 목소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VPN 사용을 강력하게 단속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변인 후자오밍은 얼마 전 중국에선 사용이 금지된 트위터를 이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윗을 잇따라 날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변인 후자오밍은 얼마 전 중국에선 사용이 금지된 트위터를 이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윗을 잇따라 날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21일부터 개막하는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또다시 인터넷 검열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번 산시성 공안의 VPN 사용자 처벌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5G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국에선 선진 기술이 일반의 발전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소수 권력자의 대중 통제를 위한 도구로 쓰이며 ‘디지털 레닌주의’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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