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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제대로 하자] 의료산업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의료산업이 적자생존 시대에 돌입했다. 무한 경쟁에 못이겨 망하는 곳이 느는가 하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흥하는 곳도 많다.

일부에서는 자본력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진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자본력이 처지는 중.소형 의료기관 중에도 성공하는 곳이 나오는 점을 감안할 때 해결책은 ´누가 빨리 환자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꾸느냐는 것´ 이다.

◇ 병원.약국 빅뱅=경영난을 겪어온 70병상 규모의 서울 H병원이 지난 6월 문을 닫았다. 관할 보건소 관계자는 "시설과 장비가 낡고, 특별히 잘 치료해주는 질병도 없어 환자들이 외면한 결과" 라고 말했다.

24일 서울 강남 아파트촌의 N약국. 오후 2~4시 사이 손님은 겨우 6명. 그나마 3명은 의사 처방전 약이 없어 돌려보냈다. 崔모(33) 약사는 "처방전 약을 죄다 갖출 만한 자금 여력이 없고 손님은 줄어 약국을 정리해야겠다" 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곳이 경영난을 겪는 것은 아니다.

서울 강북 K병원 부근 M약국은 의약분업에 대비해 약사를 2명에서 4명으로 늘리고 조제실을 확장했다. 또 병원에서 약국까지 환자를 수송하는 차량을 운행하면서 매출이 의약분업 전보다 30% 가량 늘었다.

1982년 설립 이래 10년간 적자와 노사분규에 허덕이던 경북 안동병원은 ´병원 주인은 직원이 아닌 환자´ 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재기했다.

가정 간호를 확대하고,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추모제를 지내주는가 하면 3백65일 연중 무휴, 보호자 없는 전인 간호제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매출이 92년 90억원에서 지난해 3백95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4백억원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외환 위기 때도 90%의 병상가동률을 기록, 경영난에 허덕이던 주변 병원을 놀라게 했다.

서울 삼성동 산부인과 LS병원은 골반경 수술만 고집하며 전문화로 성공한 경우. 자궁종양을 제거할 때 기존의 개복(開腹) 수술 대신 내시경을 이용함으로써 개원 4개월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

몇몇 의사가 손을 잡는 공동 개원도 늘고 있다. 서울 상계동의 연세하나로 이비인후과는 귀.코.목을 전공한 의사 3명과 마취과 전문의 1명이 모여 지난 7월 개원했다. 인근 밀레니엄 연세치과와는 수술실과 입원실을 함께 사용 중이다.

하나로 이비인후과 이진석 원장은 "공간과 장비의 공유로 경쟁력을 높이게 됐다" 며 "의사가 많아 수술할 여력이 생겨 환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고 말했다.

◇ 외국 의료자본은 국내로, 국내 중.상류층은 해외로=암메드 코리아는 암 치료로 유명한 미국 MD앤더슨의 ´표준치료´ 시스템을 연내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암환자의 국외 송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최근 유수 국제법률회사에는 이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방법을 묻는 미국 의료기기 업체와 보험사들이 늘고 있다.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정기택 교수는 "미국의 거대 의료집단은 한국에 연락사무실을 세운 뒤 환자를 동남아 병원으로 후송하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상류층 환자가 외국 병원을 찾는 사례도 많다.

姜모(43.회계사.서울 청담동) 씨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모친을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병원으로 옮겼다. 의료보험도 없어 진료받는 데만 무려 8천달러가 들었지만 姜씨는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수준이 떨어져 잘한 선택" 이라고 만족했다.

◇ 기로에 선 제약회사=우황청심원으로 유명한 중견 제약회사 조선무약이 지난 19일 자금난으로 부도를 냈다. 하지만 제약회사의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지적이다.

대형 제약회사(21개 상장사 기준) 는 올 상반기 경상이익이 2백49%나 증가하는 호황을 누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국적 제약회사의 자금과 기술력에 밀릴 것으로 보인다.

연간 6조원 규모의 의약품 시장에서 의약분업으로 20%의 매출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복사 약을 주로 생산해온 중소 제약회사들의 경영난이 우려된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5대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3.9%에 그치는 반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15~25%에 달해 경쟁이 안된다.

국내에서 연구개발비가 가장 많은 녹십자가 1백8억원인 반면 미국 그락소 웰컴은 2백배 이상 많은 20억달러(2조3천억원) . 한화증권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올해 국내 제약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예상했다.

의약품 유통 부문도 외국계가 득세하고 있다.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6백50개 회원사 중 병원과 거래하던 국내 3백여 도매상의 매출액이 60% 감소했다" 고 말했다.

[특별 취재팀]
사회부=박종권 차장, 강찬수.신성식.장정훈 기자
기획취재팀=고현곤.이상렬.조민근 기자
정보과학부=고종관 차장, 황세희 전문위원, 홍혜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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