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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만에 문 열린 학교…1L짜리 물병 들고 등교한 고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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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이구나. 마스크 때문에 못 알아봤네. 열부터 재고 교실가자." 20일 오전 8시께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과 제자가 나눈 대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80일 만에 마스크를 쓰고 학교를 찾은 광주고 3학년 250명 학생들의 등굣길 첫 관문은 체온 측정이었다.

전국 각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20일 첫 등교 #1m씩 거리두고 체온 측정 동선따라 등교 나서 #정수기도 못쓰는 탓에 개인용 물 담아 학교로 #'잡담금지' 등굣길에도 친구 만나 기쁜 학생들 # 학부모는 등교 전날 책가방에 마스크 싸주기

80일 만에 인사 나눈 스승과 제자

이날 광주고 정문부터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된 급식실까지 약 200m 등굣길에 학생들의 동선을 유도하는 삼각뿔(라바콘)이 설치됐다. 광주고 3학년 학생들의 등교시각은 모든 학생이 체온 측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8시 30분으로 정해졌지만, 오전 7시 30분께부터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80일만에 첫 등굣길에 나선 20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80일만에 첫 등굣길에 나선 20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원거리 통학생의 경우 교통편 등 사정 때문에 시간을 지키기 어려워 선생님들은 등교 시각 1시간 전부터 교문 앞에 나와 제자들을 기다렸다. 선생님들은 교문부터 교실까지 일직선이던 등굣길이 급식실부터 들리는 것으로 바뀐 상황도 알려줘야 해 학생들의 등교 예상 시각보다 일찍 학교를 나왔다.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급식실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를 지나며 체온을 재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급식실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를 지나며 체온을 재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등교 지도에 나선 광주고 선생님 10여 명은 이날 처음으로 제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 선생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넨 제자를 몰라본 또 다른 선생님에게 "00이잖아요. 마스크를 써서 못 알아보셨나 보다"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교한 탓이다.

체온 측정·거리 두기에 등교 시간도 길어져

1m씩 거리를 벌리고 체온 측정을 해야 하는 탓에 등교 시간도 길어졌다. 20일 대전시 유성구 대덕고등학교 191명의 고3 학생들은 교실 7개 크기의 강당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재고 교실로 들어서기 직전에 또다시 체온계로 열을 쟀다. 이 바람에 학교 정문에서 교실까지 등굣길이 10분 이상 걸렸다.

20일 대전시 전민고등학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교실로 들어서기 전 체온계로 열을 재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20일 대전시 전민고등학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교실로 들어서기 전 체온계로 열을 재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같은 날 269명 고3 학생들이 등교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고등학교는 8시 30분까지였던 등교 시각이 교실로 들어서기 전 모든 학생의 체온을 재면서 8시 40분이 돼서야 등교가 마무리됐다.

정수기 못 써 물 챙겨 등교한 고3 학생들

금천고 3학년 신민규 군은 1L짜리 물병을 들고 등굣길에 나섰다. 신군은 “학교 음수대를 쓸 수 없다는 공지를 받아 오는 길에 물을 샀다. 평소 물을 많이 먹는 편이라 보온병에 물을 담아 가방에 따로 넣어뒀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등교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빛고을고등학교 급식실을 교직원들이 소독 하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등교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빛고을고등학교 급식실을 교직원들이 소독 하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급식도 반별로 나눠 먹어야 한다. 광주고는 반별로 5분씩 시간을 나눠 급식실로 이동한 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식사해야 한다. 광주 북구 빛고을고등학교는 담임 선생님 인솔 하에 급식실로 이동하고 식사를 마친 뒤에도 같은 반 학생 전원이 한꺼번에 교실로 돌아와야 한다. 청주 금천고는 학생들 자율배식을 조리원 배식으로 바꿨고 6인용 식탁 정원을 3인용으로 줄여 일렬로 앉아 밥을 먹는다.

"수능 걱정 앞서지만, 친구들 만나 좋아요"

선생님들은 "1m씩 거리를 띄우라"고 경고하고 교실과 복도에는 '잡담금지'라는 공지가 곳곳에 붙었지만, 학생들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구시 성화여고 손하영 양은 "봄방학 이후 3개월만의 등교라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온라인 수업으로는 한계가 있던 궁금증도 풀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등교가 시작된 20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체온을 재기 위해 1m씩 거리를 두고 줄을 서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고등학교 3학년 등교가 시작된 20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체온을 재기 위해 1m씩 거리를 두고 줄을 서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코로나19로 미뤄졌던 학사일정도 숨 가쁘게 이어진다. 당장 21일부터 등교 이후 첫 모의고사가 치러지고 5월 중 수시일정도 있다. 학생들은 내신과 수능 대비 걱정부터 앞선다. 대구시 성화여고 장유정 양은 "내신과 생활기록부, 수행평가, 각종 교내대회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부담이다"며 "선생님과 직접 소통하는 수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등교하면 덜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개인위생 용품 챙겨주며 "단체생활 걱정"

이날 고3 자녀를 등교시킨 학부모들은 단체생활 도중에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일어날까 걱정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거주하는 김모(52·여)씨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다고 일부러 코로나에 걸리려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만지거나 침을 뱉는 짓궂은 장난을 할까 걱정"이라며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3이라도 혈기왕성한 사춘기일 때라 단체생활 도중에 돌발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선생님들이 잘 지도단속을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등교 전날 자녀의 개인 위생용품을 챙겨준 학부모도 있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거주하는 김강주씨는 자녀의 책가방에 여분의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가방에 싸줬다. 그는 학교 측에서 개인 방역용품을 마련해 뒀지만, 부족할까 걱정부터 앞섰다. 김씨는 "급식 먹기 전에 오물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앉았을 수 있으니 닦고 먹으라고 물티슈도 챙겨줬다"며 "필기구부터 사소한 것까지 친구들과 돌려쓰지 않도록 개인용품을 하나하나 챙겨줬다"고 말했다.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코로나19 공지사항과 앞으로 학사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코로나19 공지사항과 앞으로 학사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혹시 모를 코로나19 감염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 가족도 있었다. 부산 금정구에 사는 허모(51)씨는 지난 19일 개학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고3 아들과 함께 잠을 청했다. 허씨는 "오는 21일 학력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준비가 안 돼 있어 심적으로 부담이 크더라"며 "친구들 단톡방에 '개학한 후 코로나에 집단 감염되면 어쩌나'는 글이 올라온 걸 본 후 아들 또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부산·청주·대구·광주광역시=김방현·이은지·최종권·김정석·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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