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고 에어컨 가동이 늘어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에어컨으로 인해 더 확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조하면 호흡기 바이러스 더 기승 #환자 배출 에어로졸 더 멀리 날아가
방역 당국에서는 학교 교실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창문을 3분의 1 정도 열어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계속 순환하면서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전문가들은 에어컨 가동할 때 '제습' 기능도 차단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습도가 낮을 경우 바이러스 확산이 더 잘 된다는 이유다.
냉방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제습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제습하면 불쾌지수 낮아져
에어컨을 가동하면 실내 기온이 떨어진다. 또, 제습 기능을 통해 습도도 낮추게 된다.
여름철 실내 온도가 낮고 습도가 낮으면 쾌적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윤기한 통보관은 "습도가 낮으면 몸에서 땀이 잘 증발하고 체온도 낮게 유지되지만, 습도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분이 피부에 응결되면서 열을 내놓아 더 덥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는 '불쾌지수(discomfort Index)'로 설명할 수 있다. 불쾌지수는 날씨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기온과 습도로 계산한다.
불쾌지수는 '온습지수(temperature humidity index:THI)'라고도 한다.
같은 온도라도 습도가 높아지면 불쾌지수는 상승하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진다.
습도 낮으면 침방울 멀리 간다
문제는 실내 습도가 낮으면 코로나19 환자가 배출하는 침방울(비말)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 에너지·환경·화학공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사전 리뷰 사이트(medRxiv)에 공개한 논문을 통해 "환자가 내뱉는 침방울 중에서 지름이 10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이하인 것은 습도의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침방울이나 더 미세한 침방울인 에어로졸(aerosol)의 경우 배출되는 순간부터 수분 증발이 일어나고, 침방울 크기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지름이 100㎛ 이하인 침방울은 바닥에 가라앉는 시간보다 증발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
침방울 크기가 작아지고 무게도 가벼워지면 공기 중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에어컨 가동으로 습도를 낮추면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더 잘 순환하게 된다는 의미다.
건조하면 호흡기 방어력 떨어져
감기나 인플루엔자 등 호흡기 바이러스가 겨울철에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건조한 공기 탓이다.
미국 예일대 의대 면역학과의 아키코 이와사키 교수 등은 지난해 5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에서 "건조한 공기에 노출될 경우 인플루엔자 감염에 대한 숙주의 방어가 손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생쥐에게 건조한 공기를 마시도록 하면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주입한 결과, 호흡기 점막 섬모의 바이러스 제거 능력(mucociliary clearance)이나 선천적 면역에 의한 항바이러스 방어 능력, 세포 조직의 회복 등에서 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와사키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건조한 공기는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능력을 손상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습도 높다고 안심할 수는 없어
국가별, 도시별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례에 비춰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감염자가 적다는 논문도 최근 다수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기온과 습도가 높다고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열대 지역에서는 1년 내내 감기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데, 환자와의 밀접 접촉 여부가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은 사우나 안에서도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
국내 한 바이러스 전문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방울 속에 배출되는데, 바이러스가 물방울 속에 들어있다는 의미"라며 "공기 중 습도가 높다고 바이러스 자체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습도가 높으면 배출된 침방울은 빨리 가라앉지만, 일단 바닥에 가라앉은 바이러스는 습도가 높을수록 감염력을 더 오래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코로나19 탓에 에어컨을 틀어도 창문 열고 제습을 자제하느라 덜 시원한 여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