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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藥)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 ´약´의 개요

´약(藥)´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약(의약품)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하겠다. 글의 도입 부분은 으레 그렇듯이 딱딱하기 마련인지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의약품´의 줄인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전적 의미의 ´약´은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의약품) 또는 특수·일반 화학공업에서 쓰이거나 추출된 작용물질을 의미하지만, 우리 나라의 모든 의약품을 통제하고 있는 ´약사법´에서는 의약품이란 ´사람 또는 동물의 구조기능에 약리학적 영항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기구기계가 아닌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약품 외에 화학약품, 공업약품, 농약, 시약(試藥), 화약, 유약(釉藥), 구두약 등의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 비유적으로 물질이 아니면서도 몸이나 마음에 이롭거나 도움이 되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 등도 약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의약품으로서의 약만을 살펴보면 약제(藥劑)는 환자에게 곧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제된 의약품을 말하고, 생약(生藥)은 동물·식물·광물의 자연계에서 채취된 것으로서 주로 원형대로 건조·단절(斷折) 또는 정제하여 만든 의약품을 말하며 한약(韓藥)이 이에 속한다.

의약품의 제제(製劑)라 함은 의약품을 가공하여 약제 조제에 편리한 형태로 만든 것을 말하며 가공할 때에 화학적인 변화가 없어야 하며, 경고제(硬膏劑), 과립제(顆粒劑), 로션제(lotiones), 리니멘트제(liniments), 리모나데제(limonades), 방향수제(芳香水劑), 산제(散劑), 시럽제(syrups), 안연고제(眼軟膏劑), 액제(液劑), 엑스제(extracts), 엘릭실제(elixier), 연고제(軟膏劑), 유당제(乳糖劑), 유동(流動)엑스제, 에멀션제, 현탁제(懸濁劑), 점안제(點眼劑), 정제(錠劑), 좌제(坐劑),주사제, 주정제(酒精劑), 침제(浸劑), 전제(煎劑), 파스타제(pasta), 카타플라스마제(cataplasma), 캡슐제(capsules), 트로키제(troches), 팅크제(tincture), 환제(丸劑) 등이 있다.

민간약(民間藥)은 아직 과학적으로 약효 또는 성분이 확인되지 못하고 있으나, 경험적으로 전승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아직 의약품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으며 주로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다.
고서인 《급취편(急就篇)》에 “초목 금석 조수 충어지류 감유질자 총명위약(草木金石鳥獸蟲魚之類堪愈疾者總名爲藥)”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약을 자원적인 기원(起原)으로 나누면 식물·동물·미생물·광물 등이 원료가 되며, 순전히 인공적인 합성의약품도 있다.

매약(賣藥)은 사람 또는 동물의 구조·기능에 위해를 가할 염려가 적으며 사용법 또는 사용량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의약품으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약전약(藥典藥)이라 함은 그 나라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의약품에 대하여 정부가 품질·강도·순도의 기준을 정한 것을 말한다. 한국의 약전에는 약의 위험성에 따라 극약(劇藥)·독약(毒藥)·마약(痲藥) 등으로 나누며, 최고 유효량 등을 규정하고 있다.

신약(新藥)은 최근 개발되어 임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아직 약전에는 수재(收載)되지 않은 약이다.

독약은 극히 소량으로 인명을 손상시킬 수 있는 약이며, 최고유효량이 치사량(致死量)에 가깝다. 또한 독약은 축적작용이 강하거나 약리작용이 격렬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이 특별히 지정한 의약품이다. 극약은 위험성의 정도의 차이에 의하여 독약과 구별된다.

▣ 약의 어원

《설문(說文)》에 "약 치병초야(藥治病艸也)"라고 하여 병을 고치는 풀을 약이라고 한다는 것으로 보아 약의 시초가 식물성인 초목으로 시작되어 ´艸´자 밑에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뜻의 락(樂)자를 붙여서 ´藥´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글의 ´약´은 ´藥´의 독음(讀音)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원래 ´약´의 뜻이 식물이 지니고 있는 자극성(맵거나 쓴맛)을 말하며, ´약이 오른 고추´, ´담배 잎에 약이 올랐다´ 등의 용례로 보아 그와 같이 약이 오른 풀이 인체에 대한 약리작용이 있는 것을 알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물질을 ´약´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약´은 순수한 한글이라고 할 수 있다.

▣ 약의 역사

《사기(史記)》 <삼황기(三皇紀)>에 “신농씨 상백초 시유의약(神農氏嘗百草始有醫藥)”이라는 말이 있어, 전설적인 중국의 신농씨가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약을 체계화한 의약의 시조로 알려져 있고, 그가 만들었다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약물학 저술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도 그에 못지않게 오래 된 민족 고유의 약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본초학(本草學)》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쑥[艾]과 마늘[蒜, 달래]이 이미 《삼국유사(三國遺事)》 중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것이라든가, 당(唐)나라 때의 《외대비요방(外臺秘要方)》에 《고려노사방(高麗老師方)》이라는 약방문이 인용된 사실,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후위서(後魏書)》 등에 고조선(古朝鮮)의 음약(飮藥), 부약(傅藥), 자약(煮藥) 등의 방법이 있었다는 기록, 양(梁)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의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註)》에 고구려 및 백제의 인삼이 중국으로 갔다는 기록, 《증류본초(證類本草)》에 약으로 복용할 수 있는 금(生金)을 정련하는 방법이 고구려에 있다는 기록 등으로 미루어 고증할 수 있다.

일본의 문헌에도 고구려의 의약학이 일본에 전래되었으며, 백제로부터도 약재의 채취·감별·조달 등의 전문직인 채약사(採藥師), 약사주(藥使主) 또는 약물학의 지식이 많은 해약자(解藥者)들이 한국산 약재와 아울러 일본에 초빙되어 일본의 본초학의 시초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한국의 특산약품으로는 상세(上世)에 중국에 수출되었던 인삼을 비롯하여 백부자(白附子), 오미자(五味子), 여여, 세신(細辛), 토사자(絲子), 관동화(款冬花), 곤포(昆布), 율(栗), 조(棗), 무이(蕪荑), 황칠(黃漆) 등이 있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도 신라의 약방문과 약재가 당나라 또는 일본으로 수출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의약품이 일찍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약의 기록으로는 BC 2000년경에 아시아 남서부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하류지방에 살던 수메르인(人)들이 점토판에 쐐기문자[楔形文字]로 쓴 의약품의 제조법을 들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BC 1500년에 이집트의 상형문자(象形文字)로 씌어진 에벨스이며 여기에는 700종 이상의 의약품 및 811종 이상이나 되는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또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에서도 의학이 발달되어 많은 의약품의 기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약국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유럽에서 11세기경이지만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는 그보다 앞서 754년에 이미 정부 감독의 사설 독립약국이 설치되었다.

의약품은 18세기 말까지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생약을 이용하는 수준이었으나 1805년에 독일의 F.W.A.제르튀르너(1783-1841)가 아편의 유효성분인 모르핀을 발견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키나나무 껍질에서 퀴닌(1820), 시나(cina)꽃에서 산토닌(1830), 코카나무 잎에서 코카인(1860) 등 생약의 유효성분이 계속 발견되어 새로운 의약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유기화학의 발달과 더불어 유효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하게 되었는가 하면 생약과는 관계없는 합성의약품인 안티피린(1884), 디프테리아 혈청(1890), 아스피린(1898), 호르몬제(1900), 비타민제(1910) 등의 발명·발견이 이루어져 의약품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P.에를리히(1854-1915)가 인체에는 아무런 해독도 끼치지 않으면서 병원균만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의약품을 연구하여 1907년에 매독의 특효약인 살바르산(일명 606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병원균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약을 화학요법제(化學療法劑)라고 명명하였으며, 화학요법제의 출현으로 약물치료법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룩되었다. 또한 독일의 G.도마크(1895-1964)가 프론토질이라는 새로운 화학요법제를 1935년에 발견하였으며, 다시 개량하여 설파민이 나왔고, 드디어 설파제의 전성시대를 이룩하였다.

28년에 영국의 A.플레밍(1881-1955)이 푸른곰팡이로부터 세균의 발육을 저지시키는 항생물질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마침내 오늘날의 항생물질시대의 문을 열어 여러 가지 감염병(感染病)을 극복하는 데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944년에 스트렙토마이신, 1946년에는 파라아미노살리실산(PAS), 1952년에는 이소니아지드가 계속 발견되어 이 세 가지 약의 병용으로 가장 난치병이었던 폐결핵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암의 치료약도 연구 개발되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인 인터페론이 유전자공학을 응용함으로써 대장균으로부터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더욱이 동양의 한의학을 비롯한 전승치료법(傳承治療法)의 약물요법 과학화의 중요성이 근래 크게 인정되어 천연물로부터 약효성분을 탐색하는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유효성과 안정성이 우수한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특산인 고려인삼은 60년대 초까지도 뚜렷한 약효와 유효성분을 찾지 못해 과학화되지 못하다가 드디어 생체의 비특이성 저항력증대(非特異性抵抗力增大)에 의한 생체기능의 정상화 작용이 인삼의 주된 약효이며, 그와 같은 약효에 해당되는 성분이 사포닌 계열의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인삼약학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스트레스 해소에 의한 비특이성 저항력 증대라는 새로운 개념의 정립은 약리학의 일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약효는 동양의학의 상약(上藥)이라는 개념과도 부합되는 일로 크게 주목되고 있다.

한국의 제약공업은 근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항생물질을 비롯한 각종 화학요법제, 비타민제 등 모든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앞으로 한국약학의 특성과 한국인의 약물요법의 특성을 감안할 때 생약제제(生藥製劑)가 크게 발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양질의 의약품을 국민에게 공급함으로써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보건복지부 행정의 중점을 의약품 관리에 두고 있으며, 그와 같은 시책의 하나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의약품에 대하여 약효 재평가 사업을 시작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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