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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靑 불려간뒤 대규모 해상사격훈련 6월로 연기한 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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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방부가 다음 주 열리는 대규모 해상 사격 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할 방침이다. 지난 8일 국방부와 군 당국 관계자들이 청와대에 불려가 북한을 자극하는 훈련을 보도한 경위에 대한 회의를 연 뒤 연기를 결정했다. 국방부는 기상 악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선 북한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따른다.

국방부, "19일 비 온다는 일기 예보 때문" #청와대와 북한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2017년 4월 강원도 고성 송지호 사격장에서 열린 합동 해상사격 훈련에서 육군의 신예 다련장 로켓 K239 천무가 로켓탄을 연달아 발사하고 있다. 9ㆍ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에 이 같은 훈련이 3년 여 만인 19일 경북 울진 죽변 해안에서 장소를 바꿔 열린다. [중앙포토]

2017년 4월 강원도 고성 송지호 사격장에서 열린 합동 해상사격 훈련에서 육군의 신예 다련장 로켓 K239 천무가 로켓탄을 연달아 발사하고 있다. 9ㆍ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에 이 같은 훈련이 3년 여 만인 19일 경북 울진 죽변 해안에서 장소를 바꿔 열린다. [중앙포토]

17일 국방부와 군 당국에 따르면 19일 경북 울진 죽변 해안에서 예정된 대규모 해상 사격 훈련이 다음 달로 연기됐다. 익명을 요구하는 정부 소식통은 “19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에 따라 당일 항해와 비행이 어렵다. 그래서 훈련을 다음 달로 연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기상 상황을 보고 정확한 일정을 조정 중이라 아직 훈련 날짜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19일 경북 울진은 광역성 소나기가 내릴 수 있으며 강수 확률은 40%다.

육ㆍ해ㆍ공군은 19일 포병 전력, 공격 헬기, 전투함, 전투기를 동원해 해상의 목표물을 향해 실사격을 벌일 예정이었다. 이와 같은 훈련은 원래 강원도 고성 송지호 사격장에서 해왔지만 이번에 장소를 바꿨다. 군사분계선(MDL)에서 40㎞ 이내 지역에선 포 사격을 금지한 9ㆍ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이다. 송지호 사격장은 MDL로부터 32㎞ 정도 떨어졌다. 이처럼 정부는 9.19 군사합의를 준수하기 위해 훈련장 변경도 하고 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국방부와 군 당국이 일기 예보를 핑계로 훈련을 늦추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방부가 19일 훈련 개최 자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술ㆍ무기 등 아군 전력이 노출될 수 있어 홍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기 예보가 울고 싶은 국방부의 뺨을 때려준 것’이라는 후문도 군 내부에서 들린다.

훈련을 비공개로 부친 데 이어 일정까지 늦춘 것과 관련, 정부의 군사훈련 로키(low-key)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특히 지난 8일 국방부와 합참, 육ㆍ해ㆍ공군의 공보와 정책 담당자들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호출을 받고 회의를 연 뒤 나온 대응이어서 이 같은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지난 7일 국방부가 운영하는 국방일보는 해ㆍ공군의 서해 합동 훈련 실시를 보도했다. 다음날인 8일 북한은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를 내고 “모든 것이 2018년 북남 수뇌회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난했고, 청와대가 당일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청와대는 국방부와 군 당국에 국방일보 보도 경위를 물은 뒤 ‘향후 민감 사안에 대해선 청와대 등 관계 부처와 사전 협의를 강화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남북 관계가 진척을 안 보인 상태에서 청와대가 국방부와 군 당국이 북한을 더 자극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질책한 사실은 없다. 정책 홍보를 점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국방부는 훈련 비공개는 물론 훈련 자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가 곧바로 알아서 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청와대의 해명이 무색해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북한은 지난 4월 10일 관영 매체를 통해 인민군 군단별 박격포병 구분대들의 포 사격훈련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당시 훈련을 지켜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마치 포탄에 눈이 달린 것만 같이 목표를 명중하는 데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고 북한 관영 매체가 전했다.

군 내부에선 북한의 군사 훈련에 대해선 따지지 못하고, 아군의 군사 훈련을 참견하는 청와대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7일에도 지난 6일 훈련에 대해 “남조선(한국) 군부 호전광들의 북침 전쟁 책동이 전쟁 위기만을 증대시킬 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알려드립니다]5월 18일자 "청와대 불려가더니…국방부, 대규모 사격훈련 돌연 연기" 제하 기사 관련, 국방부는 "훈련 연기는 청와대 회의 및 북한 눈치보기 때문이 아니라 기상 불량 때문이었고, 송지호 훈련장은 9·19 군사합의 때문이 아니라 호텔 건설 등에 따른 안전을 고려해 현재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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