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세상] 카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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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운 일이다.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불 앞에 서서 지지고 볶고….이런 수고로움이 싫은 사람에겐 딱 한 그릇으로 식사준비가 끝나는 음식,카레가 제격이다.

카레(Curry)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향기롭고 맛있다’는 뜻의 힌두어 투리카리(Turcarri)가 투리(Turri)로 전해지다가 후에 영국으로 건너가 커리(Curry)가 되었다는 설과 남인도 카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가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또 석가모니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산중에서 고행할 때 나무 열매·풀뿌리·잎사귀 등을 먹으면서 지냈는데 후에 커리라는 지역에 내려와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산 속에서 먹던 나무 열매와 풀뿌리·잎사귀 등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석가의 가르침에 탄복함은 물론이고 향이 좋고 원기를 돋구어주는 이것을 불로장수의 명약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향신료들을 지역명을 따서 커리(Curry)라 이름짓게 됐다는 설도 있고,그 당시 사람들이 외친‘큐리,큐리’라는‘맛있다’라는 의미의 힌두어라는 말도 있다.

인도에서 카레는 갖가지 향신료를 조미료로 이용한 요리의 총칭이다.인도 요리의 대부분은 카레 요리라고 할 정도로 종류가 많고 맛도 천차만별이다.우리가 흔히 먹는‘카레’는 인도에 없다.

인도의 대표적인 요리로 알려진 카레가 현재의 형태로 보급된 것은 17세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면서 부터.인도에 살던 영국인들이 카레 요리를 본국에 전하는 과정에서 점차 유럽풍의 조리법으로 가공됐다.

초기에는 상류사회에서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으나 18세기 말 카레분말을 만드는 회사가 생겨나면서 전유럽으로 퍼졌고,이것이 1920년경에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에는 1940년대에 들어와 1970년대부터 제품화되었다.

카레하면 밥 위에 덮어 먹는 카레라이스가 떠오르지만 요즘은 갖가지 요리에 카레를 넣기도 한다.카레라면·돈가스 카레·카레우동 등은 몇몇 카레전문점에서 시도해 신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이뿐만이 아니다.우리 전통 음식을 만드는데 카레를 섞어 향과 색을 보완하기도 한다.

한 식품회사에서 주최한 요리대회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는데 카레를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요리들이 많았다.전통 한과인 약과·매작과 반죽에 카레를 약간 섞어 만들기도 하고,튀김옷 반죽이나 생선·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데도 제격이다.

카레 특유의 노란색은 강황이라는 식물에서 나오는 천연 색상인데,인도가 원산지로 생강처럼 뿌리를 이용하는 식물이다.이 색소에 있는 성분이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카레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인도 사람들에게 강황은 만병통치약이다.

상처가 났을 때 강황가루를 물에 개 바르고 우리가 여행식 비상식으로 고추장,김치를 챙기듯 그들은 강황을 챙긴다고 한다.또한 염분을 제한해야 하는 고혈압,신장병 환자에게 카레요리는 더욱 권할 만하다.

카레가루에는 염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지만 독특한 맛과 향으로 식욕을 돋우기 때문이다.보통 음식을 만들 때 맛이 안 나면 간장이나 소금을 넣는데 후춧가루나 카레가루를 넣으면 맛이 달라진다.

오늘 저녁 메뉴는 카레다.이것 저것 가족들이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볶다가 카레가루를 물에 개어 넣고 끓이면 그만이다.보통은 감자·양파·당근·돼지고기만 넣고 조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징어·새우·버섯·콩 등 조금 변화를 주면 색다른 맛의 건강식이 된다.

카레는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좋아지지만 전날 먹다 남긴 카레를 다음날 데우면 뻑뻑해진다.이 경우 맹물 대신 우유나 요구르트를 넣고 데우면 질척거리지도 않고 카레 특유의 감칠맛이 그대로 살아난다.이밖에 카레가 너무 짜게 됐을 때는 사과를 강판에 갈아 섞으면 단맛으로 인해 짠맛이 덜해지고 향도 훨씬 좋아진다.

이은숙 <음식전문잡지 주간‘쿠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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