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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말고 현금 달라"···재난지원금 풀리는 전통시장의 한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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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의 모습. 코로나19로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 이후연 기자

12일 오후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의 모습. 코로나19로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 이후연 기자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유통된다. 취지대로 ‘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을까. 긴급재난지원금의 ‘앞날’을 보기 위해 그보다 먼저 시중에 풀린 ‘사회취약계층 재난지원금’의 사용 현황을 들여다봤다.

12일 방문한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대다수의 상점들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회취약계층 재난지원금이 유통되며 소폭이나마 매출이 오른 것을 경험한 후였기 때문이다. 신당동 중앙시장의 한 음식점 사장은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이 결정된 후, 마치 벌써 돈이 들어온 것처럼 주머니가 열린 손님들이 많았다”며 “평소보다 테이블당 주문액도 더 많았다”고 웃었다.

노점상 "재난지원금 소비, 딴 나라 이야기" 

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상인들도 많았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노점상들이 대표적이다. 11일에도 영등포의 한 노점상 앞에는 현금을 달라는 상인과 온누리상품권을 내민 손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부 김씨는 “나라에서 재래시장에서 쓰라고 준 상품권인데, 왜 시장에서 안 받겠다고 하느냐”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상인은 “이거 받아도 당장 현금화할 수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노점상들은 긴급재난지원금 유통을 피부로 느낄 수가 없다. 카드 가맹점이 아니기 때문에 카드 포인트로 계산도 어렵고, 가맹점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온누리상품권을 받아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다. 가맹점만 현금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상인회에서 대신 상품권을 받아 환전해주기도 하지만 최근 상품권 유통이 늘며 제때 환전해주기 어려워졌다. 신당동 중앙시장의 한 과일가게 노점상은 “재난지원금으로 재래시장 살리자는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노점상이 많은 영등포 재래시장을 방문한 손님 중에는 “재난지원금을 여기서 쓰고 싶어도 쓰기가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매출 공개 싫어" 얌체 상인도 여전 

12일 서울 약수동의 한 골목상권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제로페이'와 '재난카드' 등을 받는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12일 서울 약수동의 한 골목상권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제로페이'와 '재난카드' 등을 받는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물론 버젓한 점포를 운영하면서도 ‘재난지원금 받기가 싫다’고 말하는 얌체 상인들도 있다. 매출 실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등포시장의 한 청과물 가게 사장은 “매출이 높게 잡히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까 카드로 계산하는 것도 꺼린 게 사실”이라며 “재난지원금은 상품권이든 카드 포인트든 투명하게 매출이 공개되니까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상인들 중에서는 ‘카드 수수료’라며 재난지원금으로 계산할 경우 10%를 더 얹거나, 아예 상품권 자체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포인트를 사용한다고 수수료를 감면해주는 혜택은 없지만, 10%를 수수료라며 더 받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과도한 수수료 책정”이라며 “이런 가맹점 때문에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재난지원금 취지가 훼손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편한 거 싫다" 재난지원금 편의점으로 몰리나  

코로나19의 영향은 업종별로 다르지만, 전통시장에서 앉아서 먹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은 손님이 크게 줄었다. 문희철 기자

코로나19의 영향은 업종별로 다르지만, 전통시장에서 앉아서 먹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은 손님이 크게 줄었다. 문희철 기자

이런 상황에서 ‘불편한 게 싫다’며 아예 편의점에서만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겠다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GS25가 4월 한달 간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제로페이와 코나카드 결제액을 분석한 결과 전월과 비교해 94.8%가 증가했으며, 그중에서도 편의점에서 잘 사지 않던 육류매출이 최대 710%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여의도의 한 편의점 점주는 “13일부터 매출이 더 증가할 것 같다”며 “요즘 1~2인 젊은 가구를 대상으로 편의점 상품들이 너무 잘 나와서, 시장으로 가는 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직접 나선 상인회 "손님 불편 없도록 할 것"  

이 때문에 재래시장 자체적으로 개선안을 내놓는 곳도 적지 않다. 수원시 22개 전통시장 상인회는 ‘지역화폐 바가지 행태’를 근절하고, 지역화폐·신용카드 사용자가 편한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장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상인회 측은 “재난지원금 사용 거부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모든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점상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지원할 것이라는 상인회도 있다. 영등포의 한 시장상인회 관계자는 “노점상분들도 소상공인에 등록을 하도록 도와주고, 스마트폰을 통한 재난지원금 결제 방법 등도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며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좋은 방향을 찾아 개선할 테니 많이 찾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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