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빼고 백악관 모두 마스크, 격리 대상 펜스는 출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공격적 전략의 용기 덕분에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승리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장에 보좌진과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공격적 전략의 용기 덕분에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승리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장에 보좌진과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나흘이 지났지만 보건 당국이 이들의 감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감염자 발생 뒤 코로나 대응 대혼란 #확진 나흘 지났지만 감염 경로 몰라 #트럼프, 왜 마스크 안 쓰나 질문에 #“다들 내게서 떨어져 있기 때문”

지난 8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공보 업무를 맡은 케이티 밀러 대변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참모들이 주말 내내 접촉자 추적을 시도했지만 밀러가 누구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CNN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추가 감염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백악관이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에게 일터로 돌아가라고 독려하면서 경제 정상화를 서두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밀러 대변인에 앞서 코로나19로 확진된, 트럼프 대통령의 시중을 드는 파견 군인에 대한 접촉자 추적도 이뤄지고 있다. 백악관 내 고위직을 폭넓게 접촉한 밀러 대변인과 달리 파견 군인은 직원들과의 접촉이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우려는 남아 있다고 CNN이 전했다.

코로나19 확진에 대응하는 백악관 모습은 혼란의 연속이다. 백악관은 11일 대통령과 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에서 근무하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라는 지침을 뒤늦게 내렸다. 지난달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안 쓰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노 마스크’ 상태였다.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당국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 대통령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이 마스크를 쓴 채 나타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를 질문 받고 취재진에 “당국자들이 내게서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며 “나는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는다. 모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의 자가격리 기준도 들쭉날쭉하다. 밀러 대변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들은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일원으로, 밀러 대변인도 TF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러 대변인과 가장 많이 접촉한 펜스 부통령은 자가격리하지 않고 정상 출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펜스 부통령은 왜 CDC 가이드라인에 따른 자가격리를 안 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할 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 시중을 드는 파견 군인이 지난 7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과 펜스 부통령은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가격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보건전문가는 “잠복기가 있어 오늘은 음성이 나왔지만 내일은 양성이 나올 수 있다”며 “그래서 (14일) 전체 기간을 격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악관도 코로나19를 통제하지 못하는데 일반 국민이 어떻게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처럼 많은 사람이 일하고 여러 명이 오가는 곳에서 양성 1명과 자가격리 3명은 매우 적은 숫자”라며 “감시와 통제가 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