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못찾는 의료계폐업]

중앙일보

입력

정부와 의료계가 팽팽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타협점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대화는 시작했으나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 건강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점에서 정부나 의료계 모두 부담은 크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정부로서는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을, 의료계는 국민 생명을 담보로 얻어낸 것이 무엇이냐는 질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다각도로 의료계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문용린(文龍鱗) 교육부장관과 차흥봉(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이 22일 부속병원이 있는 39개 대학 총장을 만나 대학병원 전공의의 업무복귀와 교수들의 사퇴방지를 설득해 주도록 요청했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여당도 의료계와 부단히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진료를 방해한 혐의로 대구시 의사회 부회장을 구속하고 의협회장과 의권쟁취투쟁위원장 등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면서 의협이 강경 분위기로 돌변, 협상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여당은 약사법의 개정 가능성을 비추면서 일단 폐업상황의 타개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서영훈(徐英勳) 대표와 이해찬(李海瓚) 정책위의장이 22일 의협을 방문해 대통령의 지시로 의사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겠다고 밝혀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키로 한 23일을 고비로 극적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어렵게 20일 협상테이블에 대좌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의협은 의약분업의 ´선(先) 보완 후(後) 시행´ 을, 정부는 ´선 시행 후 보완´ 이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의협 관계자는 "폐업을 접으려면 뭔가 회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정부에서 줘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 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굴복하지 않으면 원칙대로 폐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의 핵심 요구조건은 의사의 진료권 확보다. 혼합판매와 대체조제를 허용한 현행 약사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진료권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의약분업을 시작하는 7월 이전에 법을 즉각 개정하라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에 준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의협 지도부가 정부와 합의한다고 해도 또다시 회원들로부터 거부당한다는 주장이다.

집단폐업이 계속되면서 국민의 비난이 부담스럽지만 폐업을 시작할 때 각오한 것이고, 의사의 권위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마당에 더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은 아직까지는 확고하다.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진료권 문제는 이미 의.약.정이 합의했던 내용이고, 지금 바꾼다면 의약분업의 한 축인 약사들이 반발할 것" 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약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의사들을 만족시키는 묘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2자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약계를 포함한 3자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에 수용가능한 협상안을 가져오라고 할 게 아니라 의협이 정부가 수용가능한 협상안을 가져오라" 고 주문한다.

현재로서는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협상이 진행된다 해도 타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의협은 김재정 의협회장과 신상진 의쟁투 회장 명의로 21일 "당근을 받아먹지 말고 5~7일 이상 의연히 투쟁하자" 는 메시지를 담은 투쟁지침을 전국 회원들에게 하달해 폐업장기화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일단 형식적으로는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실질적으로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임의분업으로 진행하면서 타협점을 찾아낼 공산이 크다.

신성식.기선민.손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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