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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전망 일색인데…‘2% 성장’ 전제로 졸속 추경 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경기 침체.”(지난달 2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시(戰時)와 유사한 상황.”(지난달 10일 김용범 기재부 1차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벼랑 끝에 몰린 한국 경제를 두고 경제수장이 쏟아낸 발언이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은 올해 한국 경제가 2%대로 성장한다는 전제로 짜였다.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했다. 뉴스1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했다. 뉴스1

위기에 대응한다며 12조2000억원 규모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출 예산을 2차 추경에 반영해놓고 정작 정부 수입,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주요 예산 지표의 기초가 되는 경제성장률은 ‘위기 이전’에 맞춰놨다.

1일 기재부에 따르면 2차 추경은 올해 경상성장률 3.4%를 기준으로 편성됐다. 경상성장률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물가 상승분(GDP 디플레이터)을 더한 수치다. 기재부와 국회는 올해 한국 경제가 2.4% 성장(실질 성장률)하고 여기에 소비자ㆍ생산자ㆍ수출입ㆍ임금 등 각종 물가가 1.0%(GDP 디플레이터) 오른다는 가정에 따라 2차 추경을 짰다.

지난해 12월 19일 기재부가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수치가 그대로 적용됐다. 코로나19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확산하기 이전에 나온 숫자다. 당연히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둘러싸고 2% 성장은커녕 마이너스(-)로 고꾸라진다는 우울한 전망 일색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 가결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 가결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1.2%로 전망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모두 한국 경제 역성장을 예상했다. 피치는 -1.2%, S&P는 -0.6%라고 내다봤는데 -0.5%라고 발표한 무디스가 오히려 한국 경제를 후하게 평가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유가 전쟁으로 인한 초저유가, 코로나19로 인한 실직과 수요 감소가 저물가를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정부 수입 대부분은 세금과 기금 운용 수익이 차지한다. 정부 수입 증가율은 보통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간다. 국회에서 확정된 2차 추경 내용을 보면 정부는 올해 총수입이 지난해보다 1.3% 늘어나겠다고 예상했다. 또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1.4%로 지난해(37.1%)보다 4.3%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봤다. 모두 2.4% 경제성장률을 기초로 한 예산이다. 코로나19 효과를 반영하지 않은 성장 전망에 근거한 만큼 실제 재정 적자 ‘구멍’은 훨씬 더 클 수 있다.

여기에 정부와 국회는 3차 추경을 이미 예고한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고유가 파동이 겹쳤던 2009년 선보인 28조3889억원 ‘수퍼 추경’을 뛰어넘는 30조원 규모 ‘수수퍼 추경’이 편성될 것이란 전망이 일찌감치 나오고 있다. 예산 편성의 기본이 되는 경제 지표 전망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 탓에 나라 살림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12월과 6월, 1년 두 차례 발표하는 경제 전망치에 맞춰 편성된다”며 “올 6월 수정 전망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난해 12월 수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선진국도 그랬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도 그랬듯, 경제위기가 지나고 나면 복지 지출은 늘어나 있고 국가채무 등 재정 건전성은 나빠지는 게 수순이었다”며 “시급성만 강조해 근간이 되는 수치도 바꾸지 않고 잘못된 원칙에 따라 추경을 편성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현금 나눠주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자칫 큰 효과 없이 재정적 부담만 키울 위험이 있다”며 “이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의료ㆍ보건ㆍ교육ㆍ돌봄 등 사회 복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큰 그림도 함께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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