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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마워요" 수상한 트윗 5만건…러시아 흉내낸 中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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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사이버 정보공작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사이버 정보공작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병합할 당시 썼던 수법을 흉내 내고 있다.”

대만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6년 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손에 넣기 위해 무력 침공과 함께 대규모 사이버 여론전을 펼쳤던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알지RG]

비단 대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중국이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사이버 정보공작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는 정황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중국이 매진하는 ‘사이버 프로파간다(cyber propaganda)’는 도대체 어떻게 세계인의 삶에 파고들고 있을까요.

◇휴면 계정서 쏟아진 의문의 트윗  

“그라찌에 치나(Grazie Cinaㆍ중국 고마워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이 이탈리아에 의료지원팀을 파견하고 의료물자를 지원한 직후 이탈리아에서 중국을 칭찬하는 이런 SNS 게시물이 급증했습니다. 거의 동시에 유럽연합(EU)의 대책을 비판하는 게시물도 부쩍 늘었습니다.

수상한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 현지에서 ‘중국 배후설’이 등장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중국 푸젠성 성도 푸저우 공항에서 이탈리아로 출발하는 의료지원팀 14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중국 푸젠성 성도 푸저우 공항에서 이탈리아로 출발하는 의료지원팀 14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현지 언론(포르미체)과 마케팅 업체(알케미)가 공동 조사한 결과 지난달 11~23일 사이 트위터에서 이탈리아어로 된 친중국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약 4만8000건에 달했습니다. 이는 특정 계정들이 하루 평균 50차례 이상 밤낮없이 집중적으로 게시물을 쏟아낸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중 상당수는 이번 사태 직전까진 장기간 잠자고 있던 휴면 계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봇(bot)’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허위 계정이었던 겁니다.

지난달 16일 이탈리아 주재 중국대사관이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 "당신이 잊더라도 우리는 항상 기억할 것"이란 내용으로 양국 작가가 공동 제작한 일러스트를 함께 올렸다. '중국-이탈리아 함께 힘내자'는 뜻의 해시태그(#forzaCinaeItalia)도 달렸다. [트위터 캡처]

지난달 16일 이탈리아 주재 중국대사관이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 "당신이 잊더라도 우리는 항상 기억할 것"이란 내용으로 양국 작가가 공동 제작한 일러스트를 함께 올렸다. '중국-이탈리아 함께 힘내자'는 뜻의 해시태그(#forzaCinaeItalia)도 달렸다. [트위터 캡처]

조사 업체는 ‘중국ㆍ이탈리아, 함께 힘내자’는 뜻의 해시태그(#forzaCinaeItalia) 중 46.3%, ‘중국 고마워요’ 해시태그(#grazieCina) 중 37.1%가 봇 계정을 이용한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포르미체의 한 기자는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절망과 두려움의 순간을 겪고 있다. 중국 외교 당국이 이런 순간을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문서까지 날조해 대만 공격

대만은 늘 중국의 공격 대상 1호입니다. 대만을 노린 중국의 사이버 정보공작은 점점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대만 SNS를 뜨겁게 달군 가짜뉴스 사건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준다”는 게시물을 본 대만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면서 큰 혼란이 발생한 겁니다.

지난 2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시내버스에 타고 있다. 대만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대만 정부가 사실상의 '마스크 배급제'에 나서면서 상황이 호전됐다. [AP=연합뉴스]

지난 2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시내버스에 타고 있다. 대만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대만 정부가 사실상의 '마스크 배급제'에 나서면서 상황이 호전됐다. [AP=연합뉴스]

사람들이 이런 가짜뉴스를 믿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당 게시물들에 날조한 정부 공문서가 첨부돼 있었기 때문이죠.

코로나19 국면에서 초기 방역 대책에 성공해 지지도가 올라간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을 흔들기 위한 공작이었던 겁니다.

중국은 눈엣가시인 대만 독립파 차이 총통을 코너에 몰기 위해 다양한 술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만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간 신경전을 촉발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중국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타이난의 군사기지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의 재선을 전후해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타이난의 군사기지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의 재선을 전후해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 때 “대만으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았다”며 “대만 총통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만 정부가 WHO에 발끈하는 사이 인터넷 세상에선 전혀 반대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만인을 주장하는 SNS 계정들에서 “대만을 대표해 사죄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일제히 올린 겁니다. 일부 게시물은 대만인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건강보험증 사진까지 첨부했습니다. 예의 가짜뉴스 수법을 똑 닮았군요.

대만 당국은 “WHO 사무총장을 실제로 공격한 건 중국”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가뜩이나 외교적으로 고립된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궁지로 몰기 위한 중국의 소행이란 얘기입니다.

◇코로나19에 맞춘 ‘초한전’인가  

중국은 이런 사이버 여론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요.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 안에 자리한 싱크탱크 카네기-칭화 글로벌정책센터의 폴 헨리 국장은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중국의 사이버 정보공작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코로나19 대책에서조차 ‘미국 우선주의’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일당독재 우위성이나 국제적인 지도력을 연출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포린폴리시가 주최한 화상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세계질서를 둘러싼) 장기전을 노리고 움직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불안정한 안보 정세를 볼 때) 미ㆍ중이 서로의 생각을 오판해 긴장을 고조시킬 리스크가 있다.”

지난달 18일 러시아령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외곽의 가스포타 산에서 러시아 병합 6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한 여성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당시 특수부대와 민병대를 보내는 동시에 사이버 공격을 펼쳤다. 러시아는 프로파간다와 여론 조작을 통해 군사 침공 사실을 은폐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병합에 성공했다. 이런 러시아의 전술을 '하이브리드전'이라고 부른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러시아령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외곽의 가스포타 산에서 러시아 병합 6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한 여성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당시 특수부대와 민병대를 보내는 동시에 사이버 공격을 펼쳤다. 러시아는 프로파간다와 여론 조작을 통해 군사 침공 사실을 은폐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병합에 성공했다. 이런 러시아의 전술을 '하이브리드전'이라고 부른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 국면에서 사이버 공작의 대부 격인 러시아가 중국을 측면 지원하는 것도 미국에 대항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의 생물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개발했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려 미국의 분노를 샀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1990년대 후반 ‘초한전(超限戰)’이란 전략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전쟁 환경에선 외교전ㆍ국가테러전ㆍ첩보전ㆍ금융전ㆍ네트워크전ㆍ법률전ㆍ심리전ㆍ미디어전 등 25가지 전투 방법, 즉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중국 수뇌부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전쟁’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입에 올렸습니다. 국내 전쟁에서 이겼다고 선언한 이후, 중국의 칼끝이 세계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겁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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