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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RG]"美차이나타운, 국가처럼 될 것" 코로나가 바꿀 세계

중앙일보

입력

벌써 4개월 넘게 지속하며 세계를 뒤흔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 세계 확진자만 310만명, 사망자 22만명에 달하는 파괴력으로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혐오와 차별에 자신을 지키려...'끼리끼리' 더 강해질 것 #위생이 전부인 세상 온다...동양식 인사법 '공수' 유행할까 #불안함 씻으려 종교 찾는다..모임 대신 정신적 영역 강조 #과학적인 것이 매력적...파우치 소장 '섹시 아이콘' 등극

여러 외신이 코로나가 지나간 후 세계인들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전망하는 기사를 연이어 내놓고 있는데요. 지난달 30일 타임지와 NPR 등을 종합해 그 변화를 가늠해봤습니다.

'끼리끼리' 더 강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과 마주했습니다. 미국·유럽에서 동양 사람들이 폭행당하거나 욕설을 듣다 보니 동양계인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초기에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중국이 바이러스 발원지"라는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 내에서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혐오 받는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을 혐오하는 비극이 일어난 겁니다.

이렇게 '외국인 공포(제노포비아)'가 심해지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문화가 확고해질 것이라는 게 타임지의 분석입니다. 타임지는 "2050년에는 뉴욕의 차이나타운은 새롭게 세워져 마치 '내륙국(다른 나라에 있는 영토)'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중국계 후손들이 서로를 도와주며 뭉쳐 산다는 거죠.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보험'이 되어주는 현상이라고 타임지는 분석했습니다. 타임지는 "안정된 시기에 사람들은 외부로 눈을 돌리지만 불안정한 시기에는 자기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면서 "불안한 때일수록 사람들은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와의 단단한 결속을 원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2일 영국 런던의 차이나타운 지구를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2일 영국 런던의 차이나타운 지구를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노(no) 터치 혹은 로(low) 터치

비말을 통해 전파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으로 사람들은 향후 뷔페나 샐러드바, 대중적인 술집을 조심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모두가 사용하는 식기를 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얘깁니다. 타임지는 "인사할 때에도 포옹·악수·키스가 아닌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아시아식 인사가 유행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사람 간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일이 생활화된다는 것이죠.

무(無) 접촉 혹은 저(低) 접촉이 뉴노멀(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이 된다는 분석입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일찌감치 동양적인 인사법인 '공수'(拱手·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전하는 예법)를 선보였습니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상대방의 손을 잡지 않는 대신 자신의 양손을 모아 흔들면서 인사하는 동양적인 인사법인 '공수'를 서양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차이잉원 트위터]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상대방의 손을 잡지 않는 대신 자신의 양손을 모아 흔들면서 인사하는 동양적인 인사법인 '공수'를 서양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차이잉원 트위터]

근무환경도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위생이 전부'라는 컨셉이죠. 네덜란드의 한 기업은 '6피트(182㎝) 사무실'을 통해 근로자 간 거리를 떨어뜨려 놓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실험실·연구소에서나 봤던 항균성 소재로 사무실을 꾸미는 것도 자연스러울 전망입니다.

NPR은 "지하철·버스 등 공동의 공간을 청소하기 위해 UVC 조명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UVC는 바이러스(감염성 입자)와 박테리아(세균)를 파괴하므로 현재 치과 등 의료시설에서 사용되고 있죠. NPR은 "UVC는 피부암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밤에 사람이 없을 때를 이용해 청소 로봇이 지하철 역사 등을 소독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지난달 22일 살균력이 있는 UVC 조명을 의료진이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페인에서 지난달 22일 살균력이 있는 UVC 조명을 의료진이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제는 대세가 된 재택근무도 적극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조사기관인 가트너는 근로자의 약 41%가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으로 근무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접촉을 줄인다는 맥락에서 과거보다 출장도 줄어들 전망입니다. 모든 회의가 온라인으로 대체되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공백을 '원격 회의'가 메울 것으로 보입니다.

6피트 사무실이 코로나 이후 유행할 것으로 주목된다. 사람 간의 간격 기준을 6피트(182㎝)로 가정하고 이에 따라 사무실을 배치하는 것이다. [쿠시맨 & 웨이크필드 홈페이지]

6피트 사무실이 코로나 이후 유행할 것으로 주목된다. 사람 간의 간격 기준을 6피트(182㎝)로 가정하고 이에 따라 사무실을 배치하는 것이다. [쿠시맨 & 웨이크필드 홈페이지]

불안 떨치려 종교로…기존 종교는 신흥 종교와 겨뤄야 

타임지는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함을 경험한 이들 때문에 종교와 갱 집단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고 내다봤습니다. 사람들이 자신 앞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게 되면서 종교가 한층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하지만 종교 행사의 형식은 변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도들이 밀집해 열리던 종교행사가 코로나 기간 제한되면서, 이후엔 행사 자체보다는 한층 '정신적인 영역'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전통 종교는 메시아적인 종파들, 신흥 종교들과 겨뤄야 할 전망입니다. 기존 종교를 믿었던 이들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내가 믿던 종교가 어려울 때 나를 구원해주지 않았다"는 식으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임지는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스트롱맨'과 갱이 영향력을 얻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존 사회의 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범죄조직이 틈새를 파고들 수 있다는 거죠. 특히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코로나에 생활이 어려워진 이들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마피아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습니다.

브라질의 아티스트가 세계 각국의 종교 마크가 새겨진 마스크를 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를 그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의 아티스트가 세계 각국의 종교 마크가 새겨진 마스크를 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를 그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과학적인 것이 가장 섹시하다…젊음보다 건재를 선호

타임지는 "더는 젊음 자체는 기념할만한 일이 되지 않는다"면서 "나이가 많아도 안정되며 건재한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여러 번 위기를 넘긴 존재에 가치를 두고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매력의 기준도 코로나 이후는 사뭇 달라질 전망입니다. 피플지가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미국 코로나 대책의 수장인 앤서니 파우치(79)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을 꼽은 것은 이제는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과학적인 것이 가장 매력적인 요소가 된 거죠. 파우치 소장의 팬클럽까지 생긴 미국에서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방송에 출연해 파우치 소장을 연기하자 "1995년의 섹시스타가 2020년의 섹시스타를 연기했다"는 반응마저 나왔습니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파우치 소장을 흉내내는 연기를 한 코미디 방송(SNL)이 인기를 끌었다. [AP=연합뉴스]

배우 브래드 피트가 파우치 소장을 흉내내는 연기를 한 코미디 방송(SNL)이 인기를 끌었다. [AP=연합뉴스]

미국서는 파우치 소장을 모티브로 한 굿즈와 식음료가 인기입니다. 원래는 셔츠를 팔던 사업자였던 빌 와트 씨는 코로나 이후 사업을 마스크 판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LA에서 마스크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마스크는 파우치 소장의 얼굴을 새겨넣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면 '수호신'급입니다.

23일 미국 LA에서 마스크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최근 가장 인기가 좋은 파우치 소장 마스크를 선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23일 미국 LA에서 마스크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최근 가장 인기가 좋은 파우치 소장 마스크를 선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상품명에 '파우치'가 붙은 칵테일·빵·파스타가 나왔고 맥주까지 출시됐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애틀랜타주 양조장인 '와일드헤븐비어'는 최근 파우치 소장의 이름을 딴 '파우치 스프링'이라는 맥주를 판매했는데 인기가 많자 이를 추가 제조했습니다. 수요가 많아 1300박스 분량을 더 만들기로 한 것이죠.

워싱턴DC에서는 파우치 소장의 얼굴을 새긴 칵테일 '파우치-파우치'가 팔리고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시카고의 빵집에서는 각각 '파우치 컵케이크'와 '파우치 머핀'이, 롱아일랜드에서는 가늘고 납작한 면 링귀니를 쓴 '파우치 링귀니'가 나왔습니다. 파우치 소장의 집안이 이탈리아계다 보니 이탈리아 전통 면인 링귀니를 썼다는 후문입니다.

앤서니 파우치 소장의 얼굴을 그려넣은 음료수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트위터]

앤서니 파우치 소장의 얼굴을 그려넣은 음료수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트위터]

파우치 소장의 인기는 과학적인 분석과 신뢰감에서 나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19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 언론을 가짜뉴스로 몰아가기 바빴던 반면, 파우치 소장은 확산 위험성을 경고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전염병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정보가 범람하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를 때, 신뢰할 만한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것이죠.

과연 코로나19는 종식될까요. 파우치 소장은 지난달 28일 "코로나바이러스는 올해 하반기 2차 유행할 수도 있으며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1월께나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이 전염병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늘 그랬듯 시련을 극복하고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면서 이어져 왔습니다. 위기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이번 위기에서 비롯된 많은 변화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유진 기자·김지혜 리서처 suh.youjin@joongang.co.kr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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