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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휴대전화 3천대 "삐리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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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평양 시내에는 최근 현대적으로 지어진 시장이 개장되고, 휴대전화도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등 새로운 경제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제주도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백두산성화채화식 취재차 평양을 다녀온 본사 통일문화연구소 정창현 기자가 현지에서 본 평양의 달라진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시장경제 아닙니까."

지난 1일 평양의 고려호텔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한 가정주부에게 "주민들 사이에 시장경제라는 말을 쓰느냐"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우리집이 있는 중구역(우리의 구청)에는 아직 시장이 없어 평천구역의 시장을 주로 이용한다"면서 "국영상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남새(야채).잡곡류.신발 등을 주로 산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하는 이 가정의 한달 생활비(임금)는 8천원 정도.

달마다 차이가 있지만 쌀판매소에서 쌀을 구입하는 데 월 1천5백원, 시장에서 부식물을 구입하는 데 월 2천원 정도, 기타 지출이 3천5백원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는 생활비가 농민시장의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활비가 많이 오르고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아직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데 익숙하지는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임금과 가격 인상을 골자로 한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취한 이후 1년여가 지난 현재 북한의 경제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 모든 개선조치가 '중앙집권식 계획경제'의 틀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국가가 여전히 가격제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씩 조금씩 ' 새로운 상행위, 경제관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시장만 봐도 낙랑구역의 통일거리와 순안구역 등 두곳에는 현대식 시장건물이 개장됐다. 이어 당.정의 주요 기관과 인민대학습당 등이 위치한 중구역의 김책공업종합대학 뒤쪽에도 이런 시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6월 기존의 '농민시장'이라는 명칭을 '종합시장'으로 바꾼 데 이은 또 다른 시장지향적 조치로 보인다.

'6월 조치'가 원래 불법인 공업제품의 농민시장 유통을 합법화한 조치였다면, 이번 현대적 시설의 시장 개장은 공식적으로 개인의 상행위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1998년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 '합법적 경리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개인 소유로 인정했기 때문에 주민의 개인소득이 이전보다 더욱 늘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 주민들은 국영상점에 공급되지 않거나 부족한 물품들을 이 같은 시장에서 구입하고 있었다. 평천구역에 사는 김옥성(20)씨는 "가끔 시장에 가서 화장품 등 국영상점에 없는 물건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순안구역 시장에서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있는 한 안내원도 "시장에는 개인.협동농장.무역회사 등이 내놓은 농.토산물을 중심으로 가내수공업 제품.수입공업품 등 다양한 물품이 판매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남한의 재래식 시장처럼 북한의 시장에서도 물건값을 놓고 흥정이 이뤄지고, 품질과 수요 공급에 따라 시장마다 다른 판매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국영상점망을 통한 물자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 판매 상품은 국정가격보다 비싼 편"이라며 "시장에 나와 물건을 파는 개인이나 기관들은 판매액에 따라 일정량의 매대사용료를 시장관리위원회에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직까지는 개인들이 시장에서 큰 규모로 매대를 운영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안내원 박성일씨는 "개인이 시장에 내놓는 물건들은 협동농장이나 기관에서 내놓는 것보다 가격과 품질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시장 확대는 계획경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시장활동을 장려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휴대전화 사용=지난 1일 평양 고려호텔 1층 식당. 갑자기 "삐리릭!"하는 소리에 식사를 하던 남쪽대표단 일행은 너도나도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입북시 휴대전화를 평양공항에 맡긴 것을 잊은 채 조건반사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잠시 후 알아보니 이 휴대전화는 건너편에 있던 북한 안내원에게 온 것으로, 그는 북한 특유의 억양으로 "지금 식사 중이니 곧 가겠다"고 말했다. 평양에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풍속도다. 특히 고려호텔의 식당.맥주집.찻집 등에서는 휴대전화를 쓰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고려호텔 지하식당에 근무하는 한 봉사원은 "휴대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하자 "아! 따거다요. 주로 지방출장이 잦은 사람과 무역일군들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휴대전화를 '이동식 손전화기'라고 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따거다'로 불렀다. 이는 중국에서 휴대전화를 속어로 '따꺼따'라고 하는 발음을 흉내낸 것으로 보인다.

이날 평양 중심부의 인민문화궁전 앞 광장에는 고급 승용차와 대형버스가 주차돼 있는 광경이 목격됐다. 안내원은 '전국체신일군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이 대회에서 북한 내각의 이금범 체신상은 "전국 이동통신망을 하루빨리 건설해 이동통신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북한 언론은 보도했다. 현재 북한의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평양에는 3천대 정도가 보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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