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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정부 불확실성에 여전히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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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이번 정부가 들어선 지(2017년 5월 10일) 2년이 지난 뒤부터 기업 임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묻는 게 있다. “지난 정부 때보다 기업하기 어려워진 나라가 된 게 정말입니까”하는 질문이다. 거의 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기업 표적 수사 논란 등 그 이유는 굳이 설명을 주고받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과거에도 기업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아니었나’라는 의문 때문이다. 이명박(MB) 정부 때인 2010년 롯데마트는 한 마리 5000원짜리 ‘통큰 치킨’을 내놨다가 “영세상인을 위협한다”는 청와대의 공개적인 압박을 받고 1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도 MB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다. 2012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시절, 공급사를 늘려 기름값을 잡겠다며 삼성을 정유산업에 끌어들인 것도 그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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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땐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늘리고, 그에 따른 임금피크제는 각 노사가 알아서 합의하라고 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오늘날 기업들이 여전히 원하는 것도 규제 개혁이다. 게다가 각 기업 총수들을 따로 불러 문화 융성을 한다며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라고 했다.

이런 기억이 국민 머릿속에 생생한데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반기업 정책 기조가 나라를 망칠 것이다”는 야당의 주장이 먹힐 리 없었다. “너희들은 잘했냐”는 역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나올 수도 없었다. 결국 총선은 여당이 완승했고, 기업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

“지난 정부나 이번 정부나 기업 괴롭히는 건 똑같지 않나요. 웃으면서 때리냐 인상 쓰면서 때리냐 차이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이 물음에 한 최고경영자(CEO)는 “그 인상 쓰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인상 쓰는 것’ 중 하나는 정부의 ‘적폐 청산’ 구호라고 한다. 너무 큰 범위를 규정하고 있고, 정부의 자의적 해석과 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불확실성이 기업을 힘들게 한다는 논리다.

이제 개헌 빼고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는 정부·여당이 이런 불안감만은 해소해줘야 한다. ‘적폐 청산’ 구호가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이를 접을 수는 없겠지만, 기업 입장에서 법이 아닌 정부의 정무적 판단을 두려워하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2016년 12월)이라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호소는 아직 유효하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