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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의 ‘언택트’와 컨택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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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떠는 문화계’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게 1월 30일이다. 이후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문화계 자세’(2월27일) ‘코로나19 이후의 뉴 노멀’(3월26일)을 썼다. 석달을 돌이키면 퀴블러 로스 모델로 불리는 ‘분노의 5단계’를 겪은 것만 같다.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기초한 이 모델은 사람이 죽음과 같은 엄청난 상실을 겪을 때 보이는 심리 변화를 일컫는다. 차례로 부정(Denial)-분노(Anger)-타협(Bargaining)-우울증(Depression)-수용(Acceptance)이다.

전염병이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파탄내지 않을 거란 ‘부정’, 국내 확진자 급증에 따른 ‘분노’를 겪었다. 이후엔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상을 타협해보려 애썼다. 하지만 전 세계를 잠식한 인류사적 괴질에 우울함을 피할 수 없다. 엊그제 한·미 보건당국이 올 겨울 2차 유행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깨달았다.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바야흐로 컨택트(contact, 대면접촉)의 세계가 언택트(untact, 비대면)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노트북을 열며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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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용하고 대처하는 이들도 많다. 경기도 부천의 한 가정식 수제파이 요리점은 다이닝 코스에 포함해 내던 토마토 스튜를 최근 택배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건수 대표는 “매장 손님 3분의 2가 줄었지만 이를 스튜 매출로 회복했다”면서 “아예 집에서 다이닝 코스 전체를 즐길 수 있게 하는 패키징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간편식(HMR)과 밀키트가 주가 된다면 매장 공간 변화도 불가피할테다.

공연·예술 쪽은 어떨까. 요즘 유튜브엔 수년에 한번 내한할까말까 하던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등이 ‘무료’ 채널로 공개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등이 열어젖힌 디지털 창고엔 가입 회원이 줄잇는다. 접근 문턱이 낮아지고 동시 접속이 확대된 세상에서 엘리트·대중문화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것이다. 각 나라 언어로 된 실시간 감상평과 ‘소셜 경험’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컨택트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주인공 호머 심슨이 겪은 ‘분노의 5단계’를 참고해보자. 잘못된 복어를 먹은 심슨은 의사로부터 24시간 이내 사망 선고를 받는데, 마지막 수용(체념) 단계에서 그는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로 한다. 그 리스트란 ‘아들과 놀아주기’ ‘양로원에 보낸 아버지 방문’ ‘아내와 뜨거운 밤 보내기’ 등 친밀한 접촉 행위 일색이다. 언택트가 일반화될수록 컨택트의 소중함이 부가가치를 발할 거라는 예언에 다름 아니다.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