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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루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앗, 그래서 뛰었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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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삼성-KIA의 21일 연습경기에 마이크를 달고 경기에 나선 강명구 삼성 1루 주루코치. 다리 옆으로 마이크 줄이 보인다. [뉴스1]

삼성-KIA의 21일 연습경기에 마이크를 달고 경기에 나선 강명구 삼성 1루 주루코치. 다리 옆으로 마이크 줄이 보인다. [뉴스1]

올해 프로야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뤄진 끝에 다음 달 5일 무관중 개막한다. 경기장 ‘직관’(직접 관람)은 못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만한 게 있다. 양 팀 감독이 3연전 중 한 차례씩 3회 직후 TV 인터뷰를 진행한다. 메이저리그(MLB)는 이미 시행 중이라 팬들에게는 익숙하다.

프로야구 신풍경 마이크 찬 코치 #생생한 현장 전달하기 위해 도입 #주자에게 은유적 표현 도루 지시 #심판에 경기 상황 전하는 모습도

하나 더 있다. 1, 3루 주루코치가 마이크를 착용한다. 주루코치가 경기 도중 선수나 심판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엿들을 수 있다. 모든 얘기를 생중계하지는 않는다. 주요 장면 리플레이 때 주루코치의 말이 전달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측은 “팬들이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해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주루코치들이 이런 시도를 낯설어했다. 작전이 노출될 수도, 말실수할 수도 있어서다. 21일 시작된 팀 간 연습경기에서 시범 운영 중인데, 반응이 좋다. 방송사가 필요할 때는 적절하게 편집된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려할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주루코치가 주자에게 건네는 조언을 들으면서, 주루의 세계를 실감 나게 들여다보고 있다.

24일 부산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 경기 4회 말, 2사에서 1루에 있던 롯데 이대호가 도루를 시도했다. KBO리그 14시즌 동안 이대호의 통산 도루는 10개다. 그런 그가 도루했다는 건, 연습경기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대호가 갑자기 뛴 이유는 리플레이 때 드러났다. 오태근 롯데 1루 주루코치는 NC 1루수 모창민이 베이스를 비운 사이 이대호에게 “투수 킥 높게 드는 것만 생각해봐, 킥 높게 들면 걸어가도 되겠다, 진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이대호가 뛴 것이다. NC 투수 드류 루친스키가 투구를 하는 대신 모창민에게 공을 연결하는 바람에 이대호는 1루로 돌아오다 아웃됐다. 오 코치와 이대호는 멋쩍게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오 코치 말을 듣고 보니 이대호 플레이의 맥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24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 연습경기. 4회 말 2사 1루에 있던 롯데 이대호가 2루 도루 시도하다 투수견제에 걸려 1루로 귀루하다 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 연습경기. 4회 말 2사 1루에 있던 롯데 이대호가 2루 도루 시도하다 투수견제에 걸려 1루로 귀루하다 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호 경우처럼 주루코치가 도루를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상대 팀 1루수가 바짝 붙어있어서다. 그래서 작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21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는 8회 초 삼성 1루 주자 김지찬이 2루를 훔쳤다. 바로 직전 강명구 삼성 1루 주루코치는 “네 맘대로 해. 괜찮아. 네가 하던 대로 해”라고 말했고, 김지찬은 주저 없이 2루를 파고들었다. 선수가 주루코치의 ‘은유적’ 표현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23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6회 말, 한화 1루 주자 장진혁이 도루에 실패했다. 리플레이 영상에서 고동진 한화 1루 코치가 “숏스톱(유격수)이 (2루) 베이스에서 가깝다”고 말했는데도 뛰었다.

주루코치들은 그 외에도 심판에게 “피처 보크”, “라인 드라이브 타구” 등의 상황을 알려주는 등 경기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야구팬 박성영(34)씨는 “주루코치가 어떤 일을 하는지 큰 관심이 없었는데, 새로운 방식의 중계를 통해 주루코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수성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는 “팬이 있어야 프로야구가 있다. 팬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루코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 재밌을 것 같다. KBO리그가 더욱 발전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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