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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YBM 오너가의 ‘YBM넷’ 최고점 매각은 우연?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19 테마주로 급등 타임에 매각... 1분기 실적악화 공시하면 금융당국 표적 될 수도

‘합법과 불법 사이’ 최대주주 지분 매각

민선식 YBM홀딩스 대표이사 / 사진:뉴시스

민선식 YBM홀딩스 대표이사 / 사진:뉴시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주식시장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이른바 ‘테마주’로 꼽히는 기업의 지배주주(최대주주)들이 고점에서 주식을 처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 사실이 알려지면 주가는 떨어지고, 이로 인해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특히 최대주주가 지분을 판 이후 경영 악재가 알려져 주가가 떨어진다면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의심받을 여지가 많다.

금융당국은 주가 변동성이 큰 회사의 최대주주 지분 매도에 대해 감시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에 미공개정보가 활용됐는지를 입증하는 게 쉽지는 않다. 일각에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경영자 등은 무의식 중에라도 내부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는 만큼 보유주식 매각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심 받는 오너가의 ‘테마주 고점 매각’

최대주주의 지분매각과 관련해 최근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받는 곳은 YBM의 자회사인 코스닥 상장법인 ‘YBM넷’이다. YBM넷은 4월 1일 민선식 YBM홀딩스 대표이사 특수관계인들이 5.46%의 지분을 장내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민선식 대표는 YBM시사 창업자인 고 민영빈 회장의 장남이다.

YBM넷 주식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YBM을 포함한 민 대표 외 특수관계인들이 59.85%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민혜성씨 등의 지분매각으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54.39%로 떨어졌다. 민 대표는 YBM홀딩스 지분 69.33%를 가지고 있고, YBM홀딩스는 YBM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민 사장 특수관계인의 지분 매각에 뒷말이 많이 나오는 것은 주가 변동성이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학 연기는 온라인 교육 테마주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 중 대장주로 꼽히는 YBM넷의 주가는 개학 연기설이 나온 2월 말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3월 말 정부가 ‘온라인 개학’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급등해 3월 31일에는 장중 1만900원까지 치솟았다. 2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주가가 3200~3500원 선에서 움직인 점을 고려하면 3배나 오른 것이다.

민 대표 일가는 주가가 최고점을 찍은 3월 27~31일 보유지분을 중점 매각했다. 동생인 민혜성씨는 3월 27일, 30일 이틀 동안 보유지분 6만1756주를 전량 팔아치웠다. 민씨가 2거래일간 현금화한 금액은 51억8300만원에 이른다. 민 대표의 장남인 민병훈씨도 3월 31일 14만주를 9777원에 매도해 14억여원을 현금화했다. 주요주주의 자녀로 등재된 민지수, 민지현씨도 같은 날 각각 9886원, 9904원에 보유지분 7만주씩을 팔았다. 이 밖에 2018년까지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던 이동현 현 YBM 대표도 보유 지분을 모두 팔았다.

주가가 높은 상황에서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주식을 매도했다는 것 자체로는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실제 테마주로 부상한 회사의 최대주주가 주식을 일부 처분해 차익을 남긴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 진단키트 관련주로 묶인 랩지노믹스,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의 최대주주 특수관계자, 임원진들이 지분을 정리했으며 마스크 테마주로 뜬 회사들에서도 최대주주 특수관계자의 지분 매도가 있었다.

다만 YBM넷의 1분기 실적이 악화한다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174조에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된 내부자의 유가증권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만약 YBM넷의 1분기 경영상황이 악화했고, 이 사실을 지분을 매도한 특수관 계자들이 인지했다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겼거나 손해를 회피한 것이 된다. YBM넷은 오는 5월 15일까지 분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실제 회사 안팎에선 YBM넷의 1분기 실적이 예년에 비해 악화됐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YBM넷의 사정에 정통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사실 YBM넷은 코로나19 사태 수혜주라기 보다 악재를 정통으로 맞은 기업으로 봐야한다”며 “YBM넷의 주요사업 중 하나인 토익시험이 한달 넘게 열리지 못했고, 토익 출강·집합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YBM넷은 내부적으로 1분기 적자를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비품 사용을 제한하는 등 비용절감에 돌입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석과 관련해 YBM넷 관계자는 “온라인 교육사업 부문은 전년 동기와 대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오프라인 교육사업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영향을 받고 있다”며 “영향을 받은 사업을 중심으로 비용 절감 노력을 한층 더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주가 향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미공개 정보는 없다”며 “민혜성 주주 외 3인은 자금이 필요해 처분한 것으로만 알 뿐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고 말했다.

제이에스티나 사장 결국 구속기소

물론 ‘경영 성적’을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지난해 제이에스티나의 사례를 보면 금융당국과 검찰 등 사정기관은 ‘공시 이전의 경영상황’ 역시 중요한 정보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화한 실적 공시를 앞두고 지분을 매각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구속수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의 동생인 김기석 당시 제이에스티나 사장은 지난해 2월 1~12일 제이에스티나 주식 34만6653주(전체 주식 대비 2.1%)를 팔았고, 같은 달 12일 제이에스티나는 ‘영업손실이 1677% 확대됐다’고 공시했다. 김 전 대표 뿐 아니라 김 회장의 두 딸인 김유미·김선미씨도 1월 29일과 2월 1일 양일간 주식을 매도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는 이 주식 처분에 대해 조사를 실시해 불공정거래라고 판단하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김 전 사장은 결국 올해 초 구속기소됐다.

증권가에선 YBM넷이 1분기 악화된 실적을 공시한다면 이 회사 지분을 최근 매각한 특수관계자들 역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관계자는 “최대주주의 지분매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만약 실적 악화 등 내부적인 악재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업에 대해 검토한 바는 없지만 앞으로 나올 실적공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이에 따른 주주들의 피해가 크다면 향후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앞서도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어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은 신중을 기하는 추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의 경우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자는 지분을 매각하기 전에 재무·법무 부서와 논의를 거쳐 미공개정보이용 의심 여지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며 “우연이더라도 악재가 있다면 금융당국의 의심을 받아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공시 이후에 매도하는 등 만전을 기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은 꾸준히 발생한다.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은 2015년 35건, 2016년 47건, 2017년 36건, 2018년 36건, 2019년 23건 등이다. 국내 현행 법령상으로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나 기업 임원, 최대 주주 등이 보유 주식에 변동이 있을 때 공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거래가 진행된 뒤 내용이 공시된다는 점이다. 최대 주주가 높은 가격에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난 뒤에야 다른 투자자들이 알 수 있다. 설사 최대주주가 미공개 정보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지분을 매도하더라도 이 사실이 공시되는 순간부터 주가는 떨어진다. 최대주주는 어떤 식으로든 주가를 높인 뒤 언제든 주식을 팔면서 쉽게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테마주’에서 유독 많은 최대주주 지분 매각이 발생하는 이유다. 최대주주의 매각차익은 결국 ‘테마주’에 혹해 투자한 소액주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대주주 지분매각 사전 공시제도 고려해야

결국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최대주주의 주식거래 의혹을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대주주 및 내부자들에 대해 거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높은 수준의 규제를 통해 대주주가 지분 매각 계획을 사전에 공개하도록 유도한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내부자가 지분을 매각하는 시점에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이를 이용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 없이 미공개정보에 기반한 내부자 거래로 간주한다. 사실상 경영진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항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내부정보를 가진 자가 주식을 거래하려면 미리 계획서를 작성하고 이 계획에 따라 지분을 매각해야 면책 받을 수 있다. 대주주의 지분 매각 계획은 의무공시 대상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확실한 면책 효과를 위해 해당 계획을 공시해 일반주주들이 알 수 있도록 한다. 지난해 초에는 내부자 거래계획의 SEC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자본시장에서도 미공개정보 이용행위에 대한 사전 예방책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내부자의 사전적 거래계획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상장법인이 내부자거래 내부통제시스템을 자율적으로 강화하고, 기업사냥꾼들의 불공정 거래도 효율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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