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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일본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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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문학 한류 소식 하나.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소설가 손원평(41)씨의 청소년 소설 『아몬드』가 최근 일본 서점대상 번역 부문 1위에 올랐다. 일본 전역의 서점 직원들이 직접 투표해 뽑는 상이다. 『아몬드』는 편도체 이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는 소년의 성장기. 2017년 국내 출간돼 지금까지 40만 부 팔린 ‘화력’이 일본에서도 통하는 모양새다. 일반 독자들과 비슷한 눈높이의 직원들이 재미를 최우선 잣대로 선정하는 상이라서다. 서점대상은 영예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본상인 서점대상으로 선정되면 대개 50만 부는 팔린다는 게 일본 사정에 밝은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판 『아몬드』를 출간한 쇼덴샤 출판사는 수상 사실 발표 직후 2만 부를 더 찍었다고 한다.

유통 공룡 교보문고 도매업 진출 #책 공급 관행 개선에 도움 돼야

문학 한류 본격화,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두 가지가 부럽다. 우선 상의 권위. 수상이 판매 폭발로 이어지는 문학상이 우리에겐 없다. 과거 이상문학상이 그런 상이었으나 최근에는 기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는 그런 번쩍거리는 문학상이 없나.

이런 생각은 일본 출판계에 대한 두 번째 부러움으로 이어진다. 우리 서점 직원들이나 출판 관련 단체들은 일본의 서점대상 같은 출판상을 만들 수가 없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대형서점이나 중간 도매상은 그들 나름대로, 동네서점은 동네서점대로 각자 계산속에 따라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형국이어서다.

반면 일본은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세운 ‘일판(日販)’과 ‘동판(東販)’이라는 거대 도매상이 출판 유통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 유통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서점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이런 일사불란한 구조에서 서점대상 같은 제도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떤 제도에도 장단점이 있을 텐데 획일적인 일본 유통망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어쩐지 전체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책이라는 ‘정신의 상품’을 다루는 영역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제각각이다. 출판계 20년 숙원사업이라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출판계 구성원마다 다르다 보니 아직도 정착이 멀어 보인다. 그 결과 우리 손에 쥐어진 성적표는, 공들여 책을 만들고도 출판사 손을 떠나면 그 책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후진적 현실이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책 유통 공룡 교보문고가 도매업에 나서는 듯해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다 동네서점에 직접 공급하려 한다고 한다. 서점들과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자 당장 출판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출판사 모임인 출판문화협회가 24일 오후 관계자들을 초청해 교보의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두고 좌담회를 벌였다.

참석자들의 입장을 미리 들어 보니 대체로 불법이 아닌 이상 교보의 도매업 진출을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다. 가장 걱정이 큰 건 역시 기존 도매상들이다. 밥그릇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매상 역시 그동안 출판사와 동네서점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출판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견 출판인 A씨는 “솔직히 교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간 교보가 부린 ‘위세’에 실망이 컸다는 얘기다. 또 다른 출판인 B씨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했다. 뒤떨어진 유통 현실 개선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다.

결국 교보가 하기 나름일 텐데 상생과 계산속은 종이 한장 차이 아닐까. 코로나 대처는 우리가 낫지만, 출판 생태계는 일본이 훨씬 나아 보인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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