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가 사랑한 '자유'···그들이 외친 '자유'는 따로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4.19 09:00

업데이트 2020.04.19 11:25

[윤석만의 인간혁명]자유주의란 무엇인가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어제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미래통합당의 직전 당명이 자유한국당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자유당부터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3당 합당해 만든 민주자유당까지 자유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된 것을 보면 한국의 보수가 ‘자유’를 사랑한 것은 맞다. 번외로 김종필의 충청권 맹주 역할을 가능케 했던 자유민주연합,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등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자유’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개념이 혼재한다는 사실이다. 어제 “미래통합당은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통합만 부르짖었다,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말로 글을 시작했다. 글의 논지는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보수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몰락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개념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어제는 보수의 개념을 살펴봤고, 오늘은 ‘자유’, 나아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따져보고자 한다. 논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의 보수는 말로는 자유주의를 외쳤는데, 왜 그들이 운영하는 정당 구조와 그로부터 파생된 정치의식과 문화에는 자유주의가 없냐는 점이다. 역사의 시계를 60년 전 오늘로 돌려보자.

60년 전 오늘 4.19 혁명

김영삼ㆍ김종필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당의원들이 민주자유당 현판을 걸고 있다.

김영삼ㆍ김종필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당의원들이 민주자유당 현판을 걸고 있다.

 오늘은 4.19 혁명 60주년이다. 알다시피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운동의 초석과 같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번 법을 개정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사사오입 개헌이다.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없애려 자유당을 중심으로 헌법 조항을 고치려 했다.

 알다시피 개헌은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당시 의석수 기준으로는 135.3석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6표, 무효 1표가 나왔다. 처음엔 135.3석에 못 미쳤어 부결됐다. 그러나 여당이던 자유당은 135.3을 반올림(사사오입) 하면 135이므로, 찬성 135표를 받아 가결됐다고 선포했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정권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60년 야당의 유력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이 뇌수술 도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실시되면서 관심은 부통령 선거로 쏠렸다. 당시 국민들은 야당의 장면이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한 부정선거로 치러졌다.

 개표를 해보니 이승만·이기붕 정부통령 후보의 득표가 95~98%에 육박하는 지역이 속출했다. 조작이 너무 티나는 개표 결과에 당황한 자유당은 당시 최인규 내무장관에게 이승만은 80%, 이기붕은 70~80% 선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최종 집계 결과 이승만 88.7% 이기붕 79.2%의 압도적 당선이었다. 이것이 바로 3.15 부정선거다.

눈에 최루탄 박힌 고교생 시신

1961년 3월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혁신계 단체의 야간 횃불시위. 수백 명이 손에 횃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경찰차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사회 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1961년 3월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혁신계 단체의 야간 횃불시위. 수백 명이 손에 횃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경찰차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사회 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는데 그 시작을 알린 것은 마산 3.15 의거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한달 후 김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유기된 그의 시신을 보면서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4월 18일 고려대생 1000여명이 서울에서 처음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반공청년단 소속 폭력배들에게 공격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대학의 학생과 고교생, 시민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기록에는 20만 여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자유당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발포해 120명이 사망했다.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분명 인정하지만, 그의 말로가 좋지 않던 것은 분명한 과실이다.

 건국 이후 제대로 기틀을 갖춘 최초의 보수정당인 자유당은 이렇게 몰락했다. 당의 핵심 가치는 당명대로 분명 ‘자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개별성과 다양성, 관용의 가치를 자유당이 갖고 있진 못했다. 그런데도 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또 역대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은 그를 왜 자유주의라고 기억할까.

냉전과 국가 이데올로기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br〉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br〉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먼저 건국 이후의 시대적 상황을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어제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살펴봤다. 사회계약론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정치철학이다. 그러나 홉스의 사상에는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그는 국가가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의 계약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스스로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이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오히려 ‘신약(新約·covenant)’에 가깝다. 물론 홉스가 이런 믿음을 가졌던 이유는 당시 그가 살던 국가의 체제는 왕정이었고, 그곳의 최고 권력자는 절대군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홉스의 ‘국가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시리아에선 정부군과 반란군이 전쟁을 벌여 수백만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런 비극이 생긴 결정적 이유는 홉스가 말한 국가적 물리력이 반군을 제압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통해 수백만 명이 죽고 지금까지도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이유 역시 국가에 강력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6.25 이후 반공이 국시로  

1956년 5월 제3대 정·부통령 선거 개표 장면. 대통령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1956년 5월 제3대 정·부통령 선거 개표 장면. 대통령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부통령에는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자연스럽게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명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내란과 범죄·무질서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체제를 이식받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국체로 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발명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프랑스, 자유주의를 기치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미국과는 그 배경이 달랐다. 민주주의를 이식받긴 했지만 기본 토양이 되는 시민적 역량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가 존중받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자유세계’라는 진영 논리의 의미가 강했다. 특히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20세기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강력한 정치·사회 체제로 떠오르면서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며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반공십자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반공십자군』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선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므로 전후 한국에 이식된 ‘자유민주주의’는 미국 보수의 아버지들인 파운더스가 건국 이념으로 삼았던 자유주의와는 전혀 달랐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까지 국가가 강조한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는 ‘리바이어던’식 국가주의의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2000년대까지만 해도 보수정당은 ‘자유주의’를 공산화로부터 지켜내는 것, 즉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다. 지금도 보수 유튜버와 그들의 주된 시청층은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공산화를 반대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 역사의 과정을 살펴볼 때 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북한의 적화통일과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한국을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나라로 굳건히 지켜낸 공은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인정해야 한다.

 만일 당시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우리도 지금의 시리아와 같이 어지러운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은 인정하되 잘못된 부분도 지적해야 한다. 즉, 과거 보수를 표방한 정치세력은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만 있을 뿐, 자유주의 즉 ‘시민의 자유’를 깊게 생각지 않았다. 결국 보수정당이 자유당, 민주자유당, 자유한국당과 같은 당명에 썼던 ‘자유’의 뜻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가깝다.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

 그렇다면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미국의 파운더스 중 한 명인 패트릭 헨리가 외쳤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의 뜻은 무엇인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이 신문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계속 트럼프의 실정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제 우리는 자유주의의 교과서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살펴볼 때가 됐다. 밀이 살았던 19세기 영국으로 가보자. 1857년 여름의 어느 날 영국 남서부의 콘월(Cornwall)이란 지역에선 한 남자가 크리스트교를 비판하는 말을 대문에 써놨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얼마 후 런던의 중앙형사법원인 올드 베일리(Old Baily)에선 2명의 배심원이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배심원 자격을 빼앗겼다. 이들은 당시 재판장에서 엄청난 수모와 야유를 견뎌야 했다.

 이처럼 종교를 비난했다고 실형을 선고받고 무신론을 펼쳤다는 이유로 배심원에서 쫓겨난 것은 당시 영국에선 크리스트교를 모독해선 안 된다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속으로는 신을 부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을 믿는다’고 거짓 증언했다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양심을 속이면 이익을 얻고, 진실을 말하면 처벌받는 모순된 법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주의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광기와 집착을 불렀다. [네이버]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광기와 집착을 불렀다. [네이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밀은 “어떤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을 금지하는 법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며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법과 질서가 영국 정신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적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처럼 현실적인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론, On Liberty』)

 밀은 이와 같은 사회 제도와 관습을 과거의 유물이 남긴 ‘박해의 구습’이라고 규정한다. 절대적인 종교적 믿음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옥죄며 독단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진리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어렵고 불관용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거짓으로 위장하게” 된다. 그 때문에 밀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모든 신념과 이론, 주장 등이야말로 진짜 ‘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신에 대한 믿음을 국가에 대한 믿음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국가에 대한 비판은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그 통치자에 대한 비난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신처럼 전지전능한 권력을 갖고 있고, 국민은 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처럼 국가의 뜻이라면 언제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신념을 우리는 ‘국가주의’라고 부른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

영화 변호인.

영화 변호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에선 공안 검사와 경찰이 독서 모임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이적 행위’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학생들을 기소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이 말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체제로서의 그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법정에서 E.H 카가 ‘빨갱이’라는 검사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는 존경받는 외교관이자 학자”라는 영국대사관의 공문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원조 국가인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학자의 책을 읽고 토론한 것이 왜 ‘빨갱이’냐고 반문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며 사실상 국가주의를 맹신했던 과거의 권력들에겐 체제로서의 자유진영만 있을 뿐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다행히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가주의 사회를 벗어났다. 시민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고, 그 핵심 가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법과 폭력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자유주의 사회다.

보수 정치인들의 오해

애덤 스미스 '국부론'.

애덤 스미스 '국부론'.

 하지만 아직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반공’으로 착각하고 있다. 영향력이 큰 보수 정치인들은 최근까지도 국가주의 시대의 향수를 자극해 표를 얻으려고 했다. 21세기를 사는 국민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여전히 20세기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주의적 사고에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칭해 시민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보수 정치인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한다. ‘000과 자유의 힘’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자유주의 리더’라며 알렉시스 드 토크빌, 존 로크, 아담 스미스 등 사상가와 함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제시했다. 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며,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분명한 공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로크의 법치주의 원리대로 시민의 뜻을 대표하는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사용했는가. 개인의 자유와 공감의 원리를 강조한 스미스의 철학을 실천하고 전파했는가. 누차 말하지만 한국의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업적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이들이 시민의 자유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실천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수 정치인이 이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과거의 관념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보수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자유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오해다.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자유주의로 무엇에 대항해 싸워야 하나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 '래리플린트'.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 '래리플린트'.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정립되려면 이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업적을 인정하되, 그들이 갖고 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논리를 벗어나 진짜 자유주의로 가야 한다.

 특히 4차 혁명 시대는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우리가 패스트 팔로워로 20세기 산업화의 모범생일 순 있었지만, 21세기엔 퍼스트 무버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 전제 조건이 자율과 창의, 개방과 관용의 정신이며 이런 핵심 가치가 녹아있는 것이 자유주의다.

 그렇다면 21세기 새로운 보수가 싸워야할 지점은 어디인가. 자유주의 기본부터 따져야 한다. 시민의 권리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만일 이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유령이 보인다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막아내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국가주의 시대를 향수하는 보수 유튜버이든, ‘문프께 모든 것을 양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맹목적 친문 세력이든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비판 없는 건 종교적 믿음뿐

 과거의 국가주의와는 다른 양상으로 오늘날 한국에서 자주 목격되는 전체주의 현상이 있다. 지나친 정치적 팬덤에 의해 시민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억압되고 있다. 크리스트교를 비방하면 처벌한다는 19세기 영국법이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제한했던 것처럼 말이다.

 밀은 “과거에 허무맹랑했던 주장이 오늘날엔 상식인 경우가 많다”며 “진리를 얻기 위해선 어느 한 개인의 의견에도 재갈을 물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뉴턴을 예로 들며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론은 그 타당성을 더욱 인정받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반증될 수 없는 주장은 종교적 믿음뿐이라고 강조한다.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 끝에 살아남은 생각만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작과 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막무가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정 언론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거짓과 가짜뉴스로 궤변을 늘어놓는 데도 능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기자들과 설전을 벌일지언정, 표현의 자유까지 막진 않는다.

 며칠 전 기자회견 중 그가 코로나19 대응에서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는 홍보동영상을 틀자 몇몇 방송사가 생중계 화면을 꺼버렸다. 또 몇 년 전에는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리가 익명으로 뉴욕타임스에 그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그 만큼 미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매우 존중받는 가치란 이야기다. 진보든, 보수든 할 것 없이 자유주의의 대원칙은 다양성과 상대성에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sam@joongang.co.kr

*글쓴이의 저서『리라이트』를 참고했습니다.

윤석만은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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