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환절기엔 풀잎들이 마르고, 밤새 잠 못 이루며 콜록거리는 동안 희뿌연 물안개가 오릅니다. 알몸의 섬진강이 밤마다 희고 보드라운 잠옷을 입는 것이지요. 이른 아침 물안개의 잠옷을 살짝 들추면 물의 젖가슴엔 아직 어린 물고기들이 두 눈을 뜬 채 잠들어 있고요. 또 하루의 태양이 수중 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이라도 오리무중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어본 이라면 알지요. 차라리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있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물안개의 젖은 속살, 얼굴에 와 닿는 촉촉한 감촉에 마음을 주다 보면 어느새 길이 열리고, 저 쪽에서 또 다른 내가 강둑길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때로 삶이 막막할 때 나를 찾아 떠나는 섬진강 무진기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원규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