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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예방가능한 혈관성 치매 많아

중앙일보

입력

◈한국은 예방가능한 혈관성 치매 많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밝힌 국내 치매환자 수는 25만여 명. 2020년엔 고령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61만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구대비 치매환자의 비율은 빠른 속도로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치매환자들은 미국 등 서구 환자들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구 치매환자들은 알츠하이머라 불리는 노인성 치매가 대부분인데 비해 국내 치매환자들은 뇌졸중 후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 치매환자의 3분의 1은 혈관성 치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양상인 것으로 보아 혈관성 치매가 많은 것은 민족적·유전적 소인 때문으로 해석된다.

노인성 치매는 말 그대로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노화와 위축 때문에 발생하며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한다. 국내에 혈관성 치매가 많다는 것은 의학적인 관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아직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뚜렷한 대책이 없는 노인성 치매에 비해 혈관성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으로 평소 혈압이 높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며 담배를 피우거나 복부비만이 심하고 당뇨가 있다면 혈관성 치매의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갑자기 혓바닥이 잘 돌아가지 않는 등 말이 어눌해지거나 자동차 키를 돌리는 간단한 동작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증상이 수 분 이상 나타났다 사라진다면 장래 뇌졸중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의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들에겐 아스피린이나 혈압약·콜레스테롤저하제 등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권장된다. 전문가들은 “뇌졸중 고위험군 노인들이 미리 병원에서 약물치료만 제대로 받아도 국내 치매환자의 발생률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혈관성 치매가 많음에도 치매에 관한 한 국가의 도움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세계 10대 교역국이란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정부가 치매환자 요양과 간호에 투자하는 비용은 인색하기만 하다. 국가 주도하에 치매환자를 집단 관리하는 선진국과 달리 치매환자 대부분을 가계가 떠맡고 있다. 배회노인 팔찌 보급사업 등 치매노인 보호를 위한 각종 사업도 한국치매가족회 등 사회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9년 6월에 이르러서야 국내 최초로 정부 주도하에 전남 광양에 치매 전문병원이 생겼을 정도다. 앞으로 道마다 1개씩 치매 전문병원을 세운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치매 극복방안이지만 쏟아지는 환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도하에 설립된 치매 요양기관이 대부분 교통이 불편한 외곽지대에 위치해 있는 것도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보건소에 설치된 치매 상담신고센터다.

현재 국내에서는 2백43개 보건소에 치매 상담신고센터가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용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다. 전국적으로 등록된 치매노인 환자는 8천3백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체 환자 25만여 명의 3%에 불과한 환자만이 관리대상인 셈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관악구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인구 2만3천여 명중 10%인 2천3백여 명이 치매노인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보건소에 신고된 것은 10여 건에 불과하다.

중산층 치매환자를 겨냥한 치매 전문병원이 최근 잇따라 설립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93년 9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인천 은혜병원(인천시 서구 심곡동·3백5병상) , 용인 효자병원(용인시 구성면·4백50병상) 에 이어 서울 미아동 강북신경정신과병원, 가락동 가락신경정신과병원 등이 최근 등장한 대표적인 치매 전문병원이다. 이들의 특징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요양과 치료를 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병인을 둘 경우 월 1백50만 원이 소요되는데 비해 이들 병원은 간병료와 입원치료비를 합쳐 1백20만∼1백80만 원 정도다. 강북신경정신과병원 이강희 원장은 “치료 위주의 종합병원이나 요양 위주의 노인복지관과 달리 치료와 요양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입원실보다 거실 위주의 공동생활을 하며 24시간 약물치료와 인지재활치료·작업치료·음악치료 등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다. 단기 요양치료 위주로 운영되는 공공 의료기관보다 입원에서 임종까지 의료진이 책임지는 것도 이들 병원의 특징이다.

그러나 아직 이들 병원이 환자를 수용하기엔 병상수 등 시설이 절대 부족하다. 전국적으로 5∼6개 병원에 1천5백여 명의 환자들만 수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만 몰려있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치매환자를 둔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손실을 감안할 때 치매 전문병원의 확산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현재 도산위기에 있는 중소병원들을 치매 전문병원으로 전환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정보과학부 기자·의사·for NWK=홍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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