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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만개 항공 일자리 지켜라, 미국 30조원 ‘투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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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코로나19로 운항이 중단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들이 지난달 말 미국 피츠버그국제공항에 늘어서 있다. 미 정부는 아메리칸 등 10개 항공사와 자금지원 조건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로 운항이 중단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들이 지난달 말 미국 피츠버그국제공항에 늘어서 있다. 미 정부는 아메리칸 등 10개 항공사와 자금지원 조건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항공산업의 긴급 자금지원에 250억 달러(약 30조원)를 쏟아붓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빠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다. 약 75만 개의 일자리가 걸린 항공산업을 이대로 망하게 놔둘 수는 없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이다. 대신 항공사들은 임원 연봉 제한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항공산업이 회복하면 정부가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미 재무부, 항공업 자금지원안 발표 #9월까지 해고·급여삭감 불가 조건 #고용유지 보조금 70%, 대출 30% #임원 연봉제한 ‘지원금 잔치’ 차단 #대출 비례해 신주인수권 받기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항공산업 고용유지 프로그램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므누신 장관은 성명에서 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 등 10개 항공사와 자금지원 조건에 잠정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근로자들을 지원하고 항공산업이 전략적 중요성을 유지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동시에 납세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재무부의 항공산업 지원은 보조금 70%와 장기 저금리 대출 30%로 이뤄진다. 예컨대 100억원을 지원한다면 적어도 30억원은 정부가 나중에 받아내겠다는 얘기다. 70%의 보조금은 항공산업 종사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데 쓴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받아갈 실업급여 증가분과 일자리를 유지함으로써 내게 될 소득세 증가분 등을 따지면 이 정도 금액이라는 게 재무부의 계산이다.

미 재무부는 1억 달러 초과 대출에 대해선 10%의 신주 인수권을 받아내기로 했다. 항공사 주식을 싼값에 살 권리를 확보했다가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신주 인수권을 행사해 차익을 얻겠다는 구상이다. 므누신 장관이 언급한 ‘납세자들의 적절한 보상’을 위한 장치 중 하나다.

항공사들은 오는 9월까지 직원의 해고나 급여삭감을 할 수 없고 내년 9월까지는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줄 수 없다. 임원 연봉 제한은 2022년 3월까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미국 정부, 항공업계 지원 내용

미국 정부, 항공업계 지원 내용

항공사별로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조건도 윤곽을 드러냈다. 아메리칸항공은 58억 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중 41억 달러는 고용유지 보조금, 17억 달러는 저금리 대출이다. 이 항공사는 47억5000만 달러의 추가 대출 지원도 신청할 예정이다.

델타항공은 10년 만기 대출 16억 달러를 포함해 54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앞으로 5년간 델타항공 발행주식의 1%를 정부가 24.39달러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14일 뉴욕 증시에서 거래된 델타항공 주식의 종가(24.54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이전인 올해 초 60달러에 가까웠던 것을 고려하면 큰 폭의 할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도 10년 만기 대출 10억 달러를 포함한 32억 달러의 지원을 받는다. 이 항공사는 260만 달러어치의 신주 인수권을 정부에 주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항공회사가 과도한 정부 개입을 경계하는 점도 있어서 대출의 조건 등이 초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항공운수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으로 2200개 항공편이 운휴에 들어갔고 승객은 1년 전보다 95% 급감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전 세계 항공사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314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항공사와 노동조합은 정부 지원의 일부가 언젠가 갚아야 할 대출이라는 점에서 불만을 표시했다. 저비용 항공사인 제트블루는 보조금 6억8500만 달러와 대출 2억5100만 달러를 합쳐 9억3600만 달러를 받는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로빈 헤이즈는 “급여 지급을 위해 절실히 필요했던 현금을 받는다는 점에선 기쁘다”며 “하지만 현금 자산이 말라가는 상황에서 빚더미를 쌓아 올리는 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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