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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cm 역대급 투표용지 등장에 "하도 길어서 연습하고 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투표 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뉴스1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투표 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뉴스1

21대 총선 본 투표가 진행된 15일 전국 투표소엔 이른 아침부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도 투표 열기는 뜨거웠다. 35개 정당이 나열된 48.1cm 길이의 '역대급' 비례투표용지에 당황하는 유권자도 많았다.

새벽부터 유권자 줄 이어져

이날 용산구의 원효로 제2동 투표소 앞은 투표 시작 10분 전인 오전 5시 50분부터 유권자 10여명이 줄을 섰다. 첫 번째로 투표를 마친 전모(55)씨는 “출근해야 해서 일찍 나왔다. 코로나로 나라가 어려운데 국민을 위한 국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인표(80)씨도 “국회를 싹 다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했다.

이수민(35)씨는 “코로나19가 걱정돼 사람이 없는 시간에 하려고 일찍 나왔다”며 “막상 현장에 와보니 관리가 잘 돼 있어 큰 걱정은 안 된다”고 했다. 개인 장갑을 준비해왔다는 문근영(41)씨는 “20대 국회는 대립이 너무 심했는데 21대 국회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시민들이 10일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사전투표소에서 21대 총선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이 10일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사전투표소에서 21대 총선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고령 유권자들 “집에서 연습했다”

48.1cm에 이르는 비례정당 투표용지에 당황하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이화동 제1 투표소에선 한 남성이 투표소 사무원에게 비례 대표 투표용지를 보여주며 “왜 내가 찍던 정당 이름이 없냐”고 물었다. 사무원이 “해당 정당이 비례대표를 안 내서 그렇다”고 안내했지만, 남성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팡이를 짚고 홀로 투표소를 찾았던 94세 안덕순씨는 “너무 길어서 보이지도 않는다. 긴 놈에 한 번, 작은놈에다 한 번 찍었는데 맞게 투표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15일 서울 원효로 제2동 투표소 앞에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남수현 기자.

15일 서울 원효로 제2동 투표소 앞에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남수현 기자.

일부 고령 유권자는 집에서 미리 투표를 연습했다고 했다. 78세라고 밝힌 한 유권자는 “뉴스에서 하도 길다고 하니까 연습을 해왔다. 투표용지가 정말 길어서 내가 찍으려던 후보가 어디 있나 한참 찾았다”고 했다.

원효로 제2동 투표소를 찾은 한 70대 여성은 “비례 투표용지가 바뀐 걸 아들이 다 가르쳐줘서 헷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파도 선거를 빠진 적 없이 평생 해왔다”는 권모(84)씨는 “뽑을 곳이 딱 정해져 있어 비례명부가 헷갈리지 않았다. 세금 흥청거리며 쓰지 않을 정당과 후보에 표를 던졌다”고 했다.

긴 투표용지에 혼란스러운 건 중장년 유권자도 마찬가지였다. 김진홍(39)씨는 “비례 투표용지가 1번부터 있는 게 아니고 3번부터 시작돼 너무 헷갈렸다”며 “찬찬히 보고 뽑으려던 곳을 찾았다. 국회가 매일 싸움만 하는데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벽근무 마치고 온 간호사 “방역 철저해”

15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제1투표소 안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제1투표소 안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가족 단위 유권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어머니 권영정(78)씨를 모시고 온 아들 김민재(51)씨는 “난 사전투표를 했는데 거기가 4층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 힘들었다”면서 “일찍 투표를 마치고 외식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바로 투표소를 찾았다는 한 간호사도 “비닐장갑도 끼게 하고 생각보다 방역이 철저한 것 같다”고 했다.

6살 난 딸과 남편, 친정 부모를 모시고 온 배모(44)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밖에 못 나왔는데 투표를 마치고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가려고 한다”고 했다. 투표 열기가 높은 것에 대해선 “여당을 응원하는 입장에선 잘하고 있다고 힘을 실어주고 싶을 것 같고, 반대쪽에선 투표를 통해 심판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 다들 투표를 하러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신분증을 두고 와 투표를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간 유권자도 종종 나왔다. 신미경(62)씨는 “인터넷으로 동네 투표소 찾기를 해서 왔는데 사무원들이 다른 데로 가라고 해서 다시 나왔다”고 했다. 같은 투표소에선 60대 남성이 대기줄에 있다 신분증을 가지러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우림·남수현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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